영화인들 “힘내세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해 협상장인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정문 앞에서 사흘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천영세, 권영길, 심상정 의원(오른쪽부터) 등 민주노동당 의원단 대표들이 17일 오전 지지 방문을 온 영화배우 문소리(왼쪽 두번째)씨 등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국회에선 우리뜻이 늘 짓밟힙니다”
“수용·거부만 남은 FTA, 이제 대안 내놓으라니…” 17일 오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6차 협상이 진행중인 신라호텔 들머리는 전경버스 20여대로 가로막혀 있었다. 전·의경 1천여명의 삼엄한 ‘경비’ 속에 민주노동당 의원 9명 전원이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단식·노숙 농성 사흘째를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 추운 겨울, 소속 의원 전원이 길거리에서 단식 농성을 택한 데 대해, 당내 에프티에이 특위 위원장인 심상정 의원은 “6차 협상이 끝나면 곧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최종 타결을 위한 비공개 마라톤 협상이 진행될 텐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식투쟁을 통한 진실 알리기밖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무역 수지가 얼마나 개선되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한 채, 미국 요구를 거의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섬유-농산물 ‘빅딜’이 남았다지만 정작 남은 건 농산물 시장 파괴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들의 단식을 놓고 ‘원내 정당이 대안도 없이 장외 투쟁만 한다’는 비판도 있다. 권영길 의원단 대표는 “의원 수에 따라 법안이 결정되는 국회 안에서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노동자·농민을 위한 법들은 늘 짓밟힌다. 그런데도 국회 안에서만 활동하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또 “협정은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의 문제인데, 대안을 내놓으라는 건 기득권 세력의 상투적 수법”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의원도 “국민의 절반 이상이 협정을 반대하는데도 국회 에프티에이 특위에서 반대는 나 혼자뿐이다. 제도권 정치가 다수 국민의 이해가 반영되는 민주적 구조라면 밖에서 이렇게 떨 이유가 없다”고 거들었다. ‘불법 시위물’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천막도 못 치게 해, 이들은 방한복과 전기장판, 침낭으로만 추위를 견디고 있다. 아침엔 교대로 근처 사우나에서 씻고, 화장실은 농성장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인 장충체육관을 이용한다고 했다. 입술이 갈라진 단병호 의원은 “여기서 보면 우리만 갇혀서 협정반대 투쟁을 벌이는 것 같지만, 시골에서 서울까지 와서 거리에 나선 분들이 얼마나 많으냐. 힘이 난다”며 웃어 보였다. 24시간 시동을 켜놓은 전경버스에서 나오는 매연을 얇은 마스크 한 장으로 막으면서도 심 의원은 “아들 같은 전경들인데, 쉴 땐 따뜻하게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때마침 이영순 의원의 남편인 김창현 전 사무총장과 딸 민해(20)씨가 농성장을 찾았다. 김 전 사무총장은 천영세 의원에게 “연로하신 나이에 무슨 고생이냐”고 농담 섞인 격려를 건넸다. 민해씨는 이 의원의 손을 잡고, “이렇게 고생한 보람이 있어야 할 텐데…. 에프티에이에 사람들의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회찬 의원은 “아무리 급해도 물은 천천히 마셔야 한다”며 “충분히 조사하고 여론을 수렴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라는 물이 약인지 독인지 판단한 뒤 마셔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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