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대통합 역설, 민주당 압박…동교동계도 ‘개입’ 흔적
박상천 대표 “탈당은 배신행위”…김의원쪽 “민심 따랐다”
박상천 대표 “탈당은 배신행위”…김의원쪽 “민심 따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이 25일 민주당을 탈당해 신당에 합류했다. 민주당 소속인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지사, 유선호 의원도 김 의원과 행동을 함께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광복절에 사면복권된 뒤 올 4월25일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탈당이 여간 부담스러운 처지가 아니다. 당장 민주당 쪽에선 ‘배신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도 표출됐다.
이날 광주를 찾은 박상천 대표는 “탈당은 배신행위”라며 “특히 김홍업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이라서 민주당의 상징성과도 관련돼 매우 중요하므로 처신을 신중히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종필 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아버지 체면을 봐서라도 탈당만은 안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할 말은 태산 같지만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완곡하지만 김 의원 탈당을 김 전 대통령과 연관지은 것이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좀더 직설적으로 “호남은 디제이의 ‘주머니 속 공기돌’이 아니다”라고 김 전 대통령을 비난했다.
김 의원 탈당으로 김 전 대통령이 사실상 통합신당을 통한 범여권 새판 짜기를 밀어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김 의원의 탈당은 연말 대선을 바라보는 김 전 대통령의 의지와 연관돼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김 전 대통령은 양강 구도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공개적으로 대통합을 촉구해왔다. 김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겐 김 의원 탈당이 “이른바 ‘김심’이 민주당을 버리고 신당을 선택했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김 전 대통령 쪽은 통합신당 밀어주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동교동의 최경환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은 김홍업 의원이 지난주 탈당 뜻을 내비치자 ‘책임있는 정치인으로서 잘 판단하라’고만 했다.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김 전 대통령의 뜻은 확고하다”고 말했다. 김홍업 의원 쪽도 “선거 때 공약한 대통합 실현을 위해 책임있는 정치인으로서 지역구 유권자들과 민심에 따라서 판단했다”며 ‘디제이 배후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이 막후에서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징후들이 여럿 포착된다. 우선, 김 전 대통령 쪽 동교동계 인사들이 범여권 통합 논의에 적극 개입한 흔적이 감지된다. 권노갑 전 의원은 박상천 대표를 직접 만나 장시간 설득하는 등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인사들을 수시로 만났다.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역시 활발히 움직였다.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한 의원은 “동교동계 인사들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의 뜻이 간접적으로 전달됐다. 이것이 통합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인사들도 ‘김심’을 자주 거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탈당 의원과 단체장들에게 탈당을 만류하면, ‘디제이가 탈당을 하라고 하는데 어떡하겠느냐’며 김 전 대통령을 끌어들였다”고 주장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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