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 “판 깨기 명분쌓기냐” 반발
파국 부담 ‘문구 절충’ 가능성 커
한나라당이 8·19 경선을 보름 앞두고 여론조사 문제로 심각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당내에서는 ‘이런 식으로 가다간 경선을 정상적으로 치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관리위원회가 3일 경선 여론조사 관련 사항을 결정하지 못하고 오는 6일로 미룬 것은, 박근혜 후보 쪽의 강한 반발 때문이다. 박 후보 캠프는 이날 오전 홍사덕 선대위원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최경환 종합상황실장은 “선호도를 묻는 설문조사 방식은 국적 불명”이라며 “국회로 따지면 여야 합의로 처리하는 선거법 협상인데, 당사자가 빠진 가운데 처리하는 것은 절차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전날 여론조사전문가위원회에서 박 후보 쪽 대리인 김준철 여론조사단장은 표결 직전 퇴장했다.
박 후보 쪽이 거세게 반발하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박 후보 쪽은 “이미 역전이 시작됐다”고 주장해왔지만,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는 경선에서 50%를 차지하는 대의원·당원 선거인단과 20% 비중인 일반 여론조사에서도 모두 이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대선후보 경선 여론조사 방식으 ㄹ둘러싼 이명박-박근혜 진영 주장
이런 상황에서 박 후보 쪽으로서는 여론조사를 ‘선호도’ 조사가 아닌 ‘지지도’ 조사로 해서 이 후보와의 격차를 최대한 좁혀야 하는 처지다. 여론조사 1%포인트 차이는 득표수로 환산하면 300표 안팎에 해당하므로, 한 표가 아쉬운 2위 주자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문제다.
박 후보 쪽 김재원 대변인은 “지지도냐 선호도냐에 따라 5천표 이상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만큼 이 후보 쪽 주장대로 간다면 경선 참여가 맞는지 고려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 쪽은 박 후보 진영의 반발을 ‘경선 판 깨기를 위한 명분쌓기 아니냐’는 의혹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후보 쪽의 한 핵심 인사는 “지난달 24일 광주 연설 취소 때 박 후보 쪽의 당 지도부 흔들기나, 우리를 향한 ‘돈 선거’ 공세, 이번의 여론조사 사태 등 일련의 과정을 볼 때, 고도로 계획된 행동이라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경선 과정에 불법·불공정 시비를 계속 걸어서, 경선 연기론이나 경선 무효 주장을 펼 근거를 쌓아두려 한다는 것이다. 박 후보 캠프 인사들은 최근 들어 경선 연기론을 흘려왔다.
하지만 이번 여론조사 문제가 곧장 경선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걸로 판을 깨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것을 이-박 후보 모두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원칙’을 강조해온 박 후보로서도 당 기구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 때문에 겉으로 강경하지만, 결국 후보간 절충이 이뤄질 가능성이 두 캠프 안에서 거론되고 있다. 강용식 여론조사전문가위원장이 제시한 문항(‘누구를 뽑는 게 낫다고 생각하십니까?’)은 지지도와 선호도를 적절히 섞은 것으로, 양 캠프 안에서는 “검토해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 후보 캠프의 최경환 상황실장은 “‘누구를 선택하겠냐’ 정도라면 지지도에 가까워서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황준범 성연철 기자
jaybee@hani.co.kr
투표율 70% 가정, 선호도 조사하면 이후보가 640~960표 더 얻어
선호도 조사가 이명박-박근혜 표차에 끼치는 영향
한나라당 경선 여론조사에서 선호도와 지지도 방식은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의 당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여론조사에서 선호도 방식은 ‘누가 낫냐’, ‘누가 좋으냐’를 묻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누가 낫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구성할 수 있다. 선호도 방식은 응답자의 심리를 읽는 성격의 조사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지지도 조사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식의 질문으로 이뤄진다. 선호도 조사에 비해 적극적인 ‘행위’를 묻는 방식이다.
두 가지 방식 중 부동층 흡수 등 외연이 넓은 이 후보는 선호도를, 지지층의 폭은 좁지만 충성도가 높은 박 후보는 지지도 조사를 각각 선호한다. 지금까지 발표된 두 가지 방식의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두 진영 모두 선호도 방식이 지지도 방식보다 이 후보 쪽에 2~3%포인트 더 유리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전제에 따라 당원·대의원·일반국민 등 선거인단(18만4709명)의 평균 투표율을 70%라고 가정하면, 이 후보는 선호도 방식으로 조사를 할 경우 지지도 방식에 비해 640~960표를 더 얻는다. 이번 경선에서 여론조사의 수치(%)는 4만5717명(전체 선거인단의 20%)을 선거인단의 평균투표율로 곱해 표수로 환산한다. 가령 평균투표율 70%에서 여론조사의 전체 표수는 3만2천표다. 만약 이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40%의 지지를 얻었다면, 1만2800표를 얻는다. 선호도 조사를 통해 이 후보가 640~960표를 더 가져갈 경우 전체 유효 투표수(16만1296표)에서 0.4~0.6%포인트를 추가로 얻게 된다.
현재 판세를 ‘혼전’이라고 보는 박 후보 쪽은 여론조사의 2~3%포인트 차는 당락을 가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후보 쪽으로서도 막판 역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선 양보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두 진영은 서로 선호도와 지지도 방식이 ‘옳은 조사방법’이라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은 “선호도-지지도 모두 유의미한 지점이 있다”며 “어느 게 더 적절한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맞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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