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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르포] 민노당-노동자·농민 잇는 ‘권영길의 만인보’

등록 2007-11-02 18:09수정 2007-11-03 01:39

31일 울산시 북구 홈에버 앞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31일 울산시 북구 홈에버 앞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몸 던져 ‘처음 처럼’…진정성만이 당-민중 하나로
11월11일 ‘100만 민중대회’ 성사 일념 강행군
“당, 민중과 괴리…민심 움직여야 대선 승리”
고은 시인은 필생의 역작 ‘만인보’를 비상계엄 확대 조치로 체포돼 종신형을 살던 중 구상했다.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그 절망의 공간에서 그는,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로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하루하루의 희망으로 삼았고, 끝내 이뤄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후보는 지난달 19일 영·호남 지역 민생대장정을 시작하면서 “체념에 주저앉은 노동자·농민의 분노를 ‘권영길의 만인보’로 엮어내겠다.

‘중대 고비’때마다 찾은 울산서 영남 만인보 시작

절망에 가린 분노를 이끌어내 100만 민중대회를 성사시키고 대선에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코 앞에 두고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농민, 노조를 인정해 달라며 몸을 불살라도 외면당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11월1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외쳐보이겠다는 뜻이었다.

서울을 떠난 지 9일째인 지난달 31일, 울산에서 영남 만인보를 시작했다. 울산은 노동자 총파업과 민주노동당 창당 등 그가 ‘중대 고비’에 닥칠 때마다 찾은 곳이다. 호남에서의 강행군으로 몸무게가 6㎏이나 빠졌지만, 100만 민중대회를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현대자동차 방문, 100만 민중대회 참석 호소
“노동자들만 후보님 찍어도 될텐데…고생하십니더”

오전 9시15분, 산타페와 베라크루즈를 만드는 현대자동차 의장2부 22라인. 1분30초에 1대씩 생산해야 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일렬로 선 노동자들은 문을 달고, 나사를 끼워넣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 사이를 권 후보가 비집고 들어갔다. “고생 많으십니다.” 그가 악수를 청하며 어깨를 감싸 두드리자, 노동자들은 끼고 있던 장갑을 황급히 벗으며 손을 마주잡았다. 김광식 울산시당위원장이 “권 후보와 악수 한두 번 안해 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기자에게 귀띔했다.

서넛이 모여선 곳에서도, 휴게실에서도 권 후보는 내내 100만 민중대회 참석을 호소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자동차 산업이 더 좋아질 거라지만, 정작 공장은 앨러배마로 가게 돼 노동자들은 피해를 볼 게 뻔하다. 11월 초면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상정된다. 정말 100만이 모이면 정치권도 머뭇댈 거다. 모이면 흐름을 바꿀 수 있다. 11월11일 세상을 엎어버리자.”

31일 울산시 북구 홈에버 앞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얘기를 유심히 듣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31일 울산시 북구 홈에버 앞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얘기를 유심히 듣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한 노동자가 직접 탄 커피를 권 후보에게 건넸다. “노동자들만 후보님 찍어도 될텐데…. 고생하십니더.” 목소리에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묻어났다. 또다른 노동자는 권 후보의 ‘만인보’ 일정을 잘 아는 듯 “힘드시죠? 맨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시는데, 되는 게 없어서 우짭니까…”라고 했다. 권 후보는 “세상 한번 바꾸자고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민중대회에서 한번 엎읍시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모두가 호의적인 건 아니었다. “작업도 바쁜데, 귀찮죠. 누가 온다고 (사는 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라는 이도 있었다. 한 노조 간부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일하는데, 비정규직은 민주노동당에 관심이 덜하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비정규직 해고 반발 농성장 찾아 ‘비정규직 공약’ 발표

이날 권 후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반발해 두달 넘게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안동 홈에버 앞에서 비정규직 분야 공약을 발표했다. 이 자리엔 역시 정리해고 당한 삼성에스디아이 하청업체 하이비트 노동자들이 함께 했다. 공약 발표에 앞서, 최세진 해고자 대표가 권 대표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갈 곳 없이 길 위를 방황하며 투쟁한지 220일 되어가고, 매연과 수많은 차들의 크렉션 소리, 찬바람을 맞으며, 동지들과 감싸 안으며 길 위에서 잠을 청한지 70일이 되었습니다. 하이비트 동지들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왜 이런 현실 속에서 부딪혀야만 하는지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고 눈물이 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것 단 한 가지인데 말입니다. 왜 우리가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나요? 이렇게 투쟁할지 어느 누구도 몰랐습니다. 저의 버팀목이 되어주세요. 힘과 용기를 주세요.” 마이크를 넘겨받은 권 후보는 먹먹한 목소리로 인사한 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에스케이 에너지 노조원들 방문, 회사쪽 저지로 발길 돌려
“그냥 가면 대통령후보가 힘이 없다고 실망할텐데…”

이날 오후 권 후보는 에스케이(SK) 에너지가 건설중인 정유공장 뉴에프시시(FCC)의 플랜트 건설노조원들을 방문하려다, 회사 쪽에 저지당했다. 이 곳은 지난 2005년 노조 인정 등을 요구하며 노동자들이 고공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던 곳이다. 정문에 쳐진 바리케이트 너머로 사설 경비업체 직원 20여명이 서 있었다. 회사 쪽과 민주노동당 실무진 사이에 1시간 가까이 고성이 오갔다. 민주노동당 쪽은 “대통령후보가 노동자들을 만나겠다는데 왜 막느냐”고 항의했고, 회사 쪽은 “사전에 협의되지 않았다”며 출입을 막았다.

하지만 회사 쪽의 진짜 걱정은 다른 데 있는 듯 했다. 자신을 “이 곳을 총괄하는 본부장”이라고만 소개한 회사 관계자는 “노조가 보름 이상 (노동자들) 출근을 저지하고, 내일은 총파업을 하겠다는 마당에 권 후보가 들어가면 이들을 자극할 수 있다. 굳이 이런 불안정한 분위기에 와야 되느냐”고 말했다.

실랑이 끝에, 절차를 문제삼는 회사 쪽의 방문 거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권 후보의 한 측근은, 차에서 내리지 못한 채 상황을 지켜보던 그가 “내가 그냥 가면 대통령후보도 힘이 없다고 노동자들이 실망할텐데…”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진 플랜트건설 노조 간담회에서 노조원들은 “비 오는 날엔 밥에 빗물이 떨어지는 채로 먹는다. 화장실이 없어 볼일도 제대로 못본다”고 하소연했다. 농성을 시작한 2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요구였다. 권 후보는 “1987년같은 대투쟁으로 이런 흐름을 바꿔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간담회는 권 후보의 선창에 맞춰 “가자 서울로, 세상을 바꾸자”라는 구호로 마무리됐다.

밤 10시까지 꼬박 15시간 동안 노동자들과 만나

그는 이날 밤 10시까지 노동자들을 만났다. 꼬박 15시간이었다. 그동안 하루 수면 시간은 너댓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지율은 아직 움직이지 않는다. 이날도 현대중공업 앞에서 그와 악수를 한 뒤 돌아선 한 노동자는 “이명박이랑 악수해야 하는데, 권영길 아저씨는…”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당 일각에선 “지금 서울을 떠날 때가 아니다”라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권 후보는 “100만표, 200만표 얻는 일은 서울에서도 할 수 있다. 지지율은 100만 민중대회를 얼마나 성공시키느냐에 달려있지, 지금 거기에 얽매여선 아무 것도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농민에게 뿌리내리지 못한 게 더욱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국회의원들도 나왔지만, 당은 노동자·농민과 괴리돼 있었다. 진보진영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투쟁을 하던 금속노조 위원장이 구속돼도 성명서 한 장 내는 것 말곤 아무런 대응을 못할 만큼 약해졌다. 밀릴대로 밀린 거다. 처음처럼 돌아가야 한다. 이들을 일으켜세우려면 민주노동당과 민중의 마음을 이어야 한다.”

그는 측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만인보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진정성’이란 단어를 되풀이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비정규직 철폐는 말로만 안된다. 수세에 몰린 진보진영의 위기를 인정하고, 이들을 일으켜세울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내 몸을 던져 진정성을 보여줘야 진보·민중 진영이 움직이고, 그래야만 대선에 승리할 수 있다.”

울산/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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