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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뚝심있는 추진력…단호함 부족 평가도

등록 2007-12-05 14:53수정 2007-12-05 14:58

[대선후보 리더십 검증] 권영길
언론노련 초대 위원장, 민주노총 건설, 민주노동당 창당, 그리고 세 번에 걸친 대선 도전.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이력은 대한민국 노동운동사 그 자체다. 마흔여덟에 늦깎이로 노동운동에 뛰어든 권 후보가 이처럼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온 데는 특유의 추진력과 결단력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그의 리더십을 두고는 흔히 ‘호시우행’(호랑이처럼 매섭게 현실을 직시하되, 소처럼 우직하게 걷는다)이란 말이 뒤따른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탓에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총파업·대선출마 때 ‘대화’로 노조 동의 끌어내
“호랑이 눈으로 보고 소처럼 걷는다” 평가 뒷면에
갈등 피하려 지나치게 신중해 ‘우유부단’ 지적도

■ 호시우행=1995년 여름 민주노총준비위 전국 단위노조 대표자 수련회가 속리산에서 열렸다. 대표자 500여명이 모인 그 자리에서, 당시 준비위 공동대표였던 권 후보는 “정부의 노동관계법 개정 움직임이 심상찮다. 민주노총을 만들고 나면, 총파업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한테선 “무슨 총파업이냐”며 황당하다는 반응부터 “자기가 언제부터 파업했다고…”라는 비아냥까지 흘러나왔다. 그로부터 1년 동안 권 후보는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 1천여 곳을 돌며 “총파업으로 노동자의 힘을 보여줘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현장 노동자들을 설득했다. 1996년 10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포함한 정부개정안이 관철될 조짐을 보이면서, 민주노총 일부에선 조기 총파업 주장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권 후보는 “파업하는 이유를 운동권이 이해해도 국민이 못 받아들이면 성공할 수 없다. 좀더 기다리자”며 만류했다. 12월26일 새벽, 집권 신한국당은 노동관계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소식을 전해 들은 권 후보는 즉각 전 소속 사업장에 총파업을 지시했다. 그날 파업에만 14만여명이 동참했고, 1997년 2월 말까지 3422개 노조, 387만8211명이 참가했다. 지지 여론도 70%에 이르렀다.

당시 민주노총 준비위에서 전교조 실무대표를 맡았던 최철호 금호여중 교사는 “대한민국 사상 첫 정치파업을 성공으로 이끌어, 권 후보는 민주노총 안에서 절대적인 지도력을 인정받게 됐다”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총파업이 1년 뒤 현실이 된 건 권 후보의 치밀한 정세 판단과 현장방문에서 보여준 진정 어린 설득 때문”이라고 말했다.

■ 탈권위=1997년 민주금속연맹 위원장이었던 단병호 의원은 권 후보의 대선 출마를 “갓 만들어진 민주노총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권 후보는 그의 출마 여부를 최종결정하는 민주노총 9월 대의원대회를 하루 앞두고 단 의원을 찾아갔다. 단 의원을 찾아간 권 후보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4시간 뒤, 단 의원은 “출마하시라”며 권 후보의 손을 들어줬고, 다음날 대의원대회에서 “찬반 표결 없이 권 후보를 밀어주자”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만장일치로 그의 대선 출마를 찬성했다. 단 의원은 당시 상황을 전하며 “아무리 말해도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꼭 필요하다는 뜻을 굽힐 것 같지 않았다. 그 의지에 설득당한 셈”이라고 말했다. 권 후보 주변에선 이 일을, 그의 확고한 자기확신과 의지가 사람의 마음을 자연스레 움직인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

그의 또다른 장점으론 ‘탈권위적 리더십’이 꼽힌다. 지난해 봄 보좌관에게 정책 브리핑을 받던 권 후보는 자신의 양복 저고리 단추가 떨어진 걸 발견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보좌관한테서 반짇고리를 빌려 직접 단추를 달았다고 한다. 보좌관이 “제가 달아드리겠다”고 몇 차례나 말했지만 권 후보는 “괜찮다”고 말했다.


■ 우유부단=사무직-생산직의 의견이 부딪혔던 민주노총, 자주파-평등파의 생각이 다른 민주노동당을 이끌면서, 권 후보는 분란이 생길 만한 결정은 하지 않았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의견을 조율할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또 담당자가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 때문에 권 후보에겐 늘 “우유부단하다”는 비판적 평가가 따라다닌다.

최근 벌어진 선거 포스터 폐기 소동 때도 권 후보는 담당자에게 아무런 문책을 하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김선동 상임 선대본부장은 선거 포스터를 인쇄하면서, 이미 슬로건에서 폐기된 ‘코리아연방공화국’을 집어넣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은 격렬한 당내 논란 끝에, 슬로건보다 하위 개념인 공약의 하나로 정리된 평화·통일 방안이다. 선대위 관계자들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인쇄를 중단시켰다. 이미 인쇄가 끝난 2천만원어치 포스터 5만부는 폐기됐다. 하지만 이런 일을 보고받고도 권 후보는 아무 말도 어떤 조처도 하지 않았다.

선대위 구성에 3주가 걸린 일도 그의 결정이 늦어졌기 때문이란 평가가 나온다. 9월15일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권 후보는 10월6일에야 문성현·노회찬·심상정 공동 선대위원장을 내세운 선대위를 꾸렸다. 권 후보와 호흡을 맞춰온 경선 캠프 핵심인사들을 중심으로 선대위를 꾸려야 한다는 의견과, 경선을 함께 치른 노회찬·심상정 의원 쪽 인사들의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하루빨리 본선체제를 갖춰 지지율 올리기에 온힘을 모아야 하는데, 권 후보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해 안타깝다”는 말이 나왔다.

김창현 공동 선대본부장은 “누구 하나 내치지 않는 신중함은 정파와 조직, 노선의 갈등이 상존하는 민주노동당을 원만하게 이끈 무기였지만, 이 때문에 꼭 해야 할 중요한 결정을 못 하기도 한다”며 “정세 판단의 단호함을 다른 부분에서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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