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파도 평등파도 “총선 비례대표 기득권 포기”
쇄신안 물꼬 텄지만 수습절차 이견·불신은 여전
쇄신안 물꼬 텄지만 수습절차 이견·불신은 여전
민주노동당이 대선이 끝난 지 나흘만에 전면적인 당 쇄신안을 내놓았다. 당 지도부 총사퇴와 비상대책위(비대위) 구성이다. 당내 양대 정파인 자주파(NL)와 평등파(PD) 모두 국민들에게 외면당했다는 반성 위에서 위기 탈출의 길을 찾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느끼는 위기감은 절박하다. 김창현 전 사무총장은 “미봉책으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철저한 자기 반성을 바탕으로, 당을 쇄신하고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습안이 급물살을 타는 배경엔, 당 바깥과 일부 당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분당론을 조기에 차단해 당을 존립의 위기로까지 방치하지 않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양쪽은 모두 가장 예민한 사안인 내년 총선 비례대표 경선에서 ‘기득권’을 버리겠다고 나섰다. 지역구 선거에서 당선이 쉽지 않은 민주노동당에서 비례대표는 상대적으로 편하게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길이라, 각 정파들 사이에선 경쟁과 갈등이 치열했다. 자주파 내부에선 “모든 기득권을 다 버려야 한다”는 의견이 급격히 확산되는 가운데, 당선 가능성이 높은 5번까진 자주파 쪽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방안도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자주파 쪽의 한 인사는 “우리 쪽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이명박 정권과 세게 맞붙을 만한 실력과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이들을 전략 공천하도록 해 당의 변화를 국민들에게 선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평등파 최대 의견그룹인 ‘전진’도 당 쇄신작업에 전념하고자, 비례대표 경선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양쪽이 모두 “손에 쥔 것을 다 내놓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깊은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평등파 쪽은 “선거 패배의 일차적 책임은 자주파에게 있는데, 뒷일은 우리가 책임지라는 것이냐”고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는 대선을 치르면서 진 빚 30억원이다. 자주파 쪽은 “비대위에 떠넘기겠다는 게 아니라, 선거를 맡았던 사람들이 공동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수습절차를 놓고도 생각이 다르다. 자주파 쪽은 오는 29일 중앙위원회에서 빨리 결론을 내자는 태도다. 하지만 평등파 쪽은 가능한 한 빨리 임시 당 대회를 소집해 ‘제2 창당위원회’ 결성 등 전면적 당 쇄신을 논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심상정 의원이 비대위원장직 수락을 고사하고 있는 것도, 기껏 위기를 수습해도 또다시 정파들의 패권 다툼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한 핵심 측근은 “자주파든 평등파든 쓰는 사투리가 다를 뿐이지 기득권을 놓고 싸웠던 건 똑같다. 이런 상황에서 환부는 터트리지 않은 채 얼굴을 잠깐 바꾼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말했다. 내년 총선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심 의원으로선, 비대위원장직을 동시에 맡는 일이 부담스러운 상황이기도 하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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