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인이 14일 오전 통의동 집무실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미처 보지 못하고 왕이 중국 외교부 부장과 악수한 채 사진을 찍는 동안 박 전 대표가 머쓱한 표정으로 서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무시전략’ 상대 안해주고
공천’ 싸울수록 ‘무게감’ 떨어지고
공천’ 싸울수록 ‘무게감’ 떨어지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4일 “(강재섭 대표는) 일련의 얘기가 나올 땐 모욕감을 느끼지 않다가 제가 얘기하니 모욕감을 느끼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다”며 강 대표를 공격했다. 지난 11일 강 대표가 “권한 없는 사람이 당을 공격해서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한 데 대한 ‘맞대응’이다.
한때 자신의 편이었던 강 전 대표를 맞상대해야 하는 박 전 대표의 처지에서, 요즘 그가 처한 딜레마적 상황이 고스란히 읽힌다. 우선 공천을 앞두고 공격의 총대를 멜만한 사람이 박 전 대표 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 측근은 “지난 12월19일을 기점으로 이 당선인에게 모든 힘이 쏠림에 따라 ‘말발’이 먹힐 사람은 사실상 박 전 대표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도 김무성 최고위원은 ‘물갈이’ 발언을 한 이방호 총장을 당 분열의 원인 제공자로 공격하고, 공천심사위의 밑그림도 논의하자고 했으나, “공천 얘기 그만하자”는 다른 참석자들의 면박성 발언에 힘이 부치고 말았다.
문제는 박 전 대표가 자파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면에 나설 때마다 본인의 ‘정치적 가치’에 조금씩 금이 간다는 데 있다. 이 당선인 쪽의 무시 전략으로 좀처럼 파장이 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 대표가 박 전 대표를 공격하고 나서는 바람에, 애초의 의도와 달리 강 대표와 날을 세우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당의 한 간부는 “이미 이 당선인은 박 전 대표와 싸울 상대가 아니다. 박 전 대표가 강도높은 발언을 할 때마다 예전엔 ‘그 아래’에 있던 강 대표의 위상은 올라가지만 박 전 대표의 무게감은 떨어지게 된다”고 풀이했다. 안 싸울 수도 없고, 싸우자니 격이 떨어지는 처지인 셈이다.
박 전 대표의 처지에선 ‘국정의 동반자’라는 역할도 쉽지 않아 보인다. 박 전 대표는 이달 초 “국익과 당무는 별도”라며 중국 특사를 수용했지만, 측근 의원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반발이 심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도 특사 자격으로 이 당선인과 함께 중국에서 온 왕이 특사를 만났고,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사진을 찍었다. ‘국익’을 위한 자리였으니만큼, 공천 문제는 꺼내지 않았지만, 그로부터 세시간 뒤 여성신문사가 주최한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 지도자상’을 받으러 가는 자리에서 불만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이유주현 조혜정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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