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의원들의 잇따른 공천 탈락 뒤 공식 일정을 취소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7일 오후 승용차에 탄 채 서울 삼성동 자택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영남 물갈이 예의주시…“정치력 부족” 비판 직면
공심위, 일단 이명박계 이원복 탈락시켜 ‘달래기’
공심위, 일단 이명박계 이원복 탈락시켜 ‘달래기’
이규택·한선교 의원 등 계보 의원들의 공천 탈락을 지켜보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시름이 깊다. “나를 도왔다고 탈락시키냐”,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등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며 항의의 뜻으로 공식 일정을 취소했지만 별다른 ‘뾰족수’가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7일 삼성동 자택에 머물다 오후에 잠시 외출해 전날 탈락한 이규택 의원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미안하다. 내가 힘이 없어서 이렇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과 만났을 때 ‘우리를 믿으라’고 해서 신뢰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깊이 위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가 거세게 반발하자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는 이날 현역 의원 중 ‘친이명박’ 성향의 이원복 의원(인천 남동을)을 떨어뜨렸다. ‘박근혜 달래기’의 모양새를 취한 셈이다. 박 전 대표 쪽 의원들은 공천 결과를 전해들은 뒤 일단 집단적인 모임은 갖지 않고 관망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피바람은 시작됐다. 곳곳에서 물갈이 얘기가 터져나온다. 박 전 대표로선 공천 칼자루를 쥔 상대방 앞에서 저항할 수단이 마땅찮다. 강력한 무기였던 ‘칩거’도 약발이 떨어졌다. 대선 때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으로선 승리를 위해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박 전 대표를 끌어안을 필요성이 있었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표가 집안에서 꼼짝 않고 있으면 이 대통령은 그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어떤 ‘선물’을 줄까 고민해야 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여론조사에서 20%대의 지지율에 육박하던 지난해 11월 이 대통령은 ‘국정의 동반자 선언’을 했다. 이튿날 박 전 대표는 외출복 차림으로 기자들 앞에 서서 “이 총재의 출마는 정도가 아니다”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렇게 ‘탈당’의 여지를 스스로 막아버린 뒤 ‘한나라당 당원’으로서 이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나름대로 도왔다. 이제 와서 공천이 뜻대로 안 된다고 문을 박차고 나가기엔 명분이 부족하다. ‘박근혜계’의 한 핵심 의원은 “탈당하기엔 너무 늦었다. 이젠 박 전 대표에겐 ‘말’밖에 없는데, 말이 무슨 소용인가”라며 한숨을 쉬었다.
자파 인사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가자 계파 내부에선 박 전 대표의 정치력 부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를 돕고 있는 한 인사는 “그동안 몇몇 의원이 ‘박근혜계’를 대표해 ‘이명박계’와 물밑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이들은 한선교 의원이 떨어진 직후에도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더라. 박 전 대표는 협상이 잘 안된다는 것도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계파 내부의 한 인사는 “감독(박 전 대표)과 코치(협상자)가 서로 손발이 안 맞아 경기에서 진다면 그것은 결국 감독 책임”이라고 짚었다.
‘계파 정치’는 안 하겠다고 했던 박 전 대표가 결국 경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계파’에 발목이 잡혔다. 그나마 지금은 그 계파의 힘을 한데 모아 분출하기도 쉽지 않다. 공천 여부는 어차피 개별적이다. 살아난 사람과 탈락한 사람, 그리고 공천을 앞두고 있는 사람을 단일 대오로 묶어내기엔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많다. 영남권의 대폭적인 공천 물갈이가 코앞에 다가온 이날, 박 전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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