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당권-대권 분리 불구 당 일정 등 ‘재가’
한쪽선 “당헌 위반” 반발…다른쪽선 “당헌 개정”
한쪽선 “당헌 위반” 반발…다른쪽선 “당헌 개정”
당권-대권 분리냐, 당정일체냐.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관계는 기묘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이 대통령 스스로 “복잡한 정치는 당에서 하는 것”(4월13일 기자회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나라당에 가장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바로 이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4·9 총선을 앞두고 당 공천에 깊숙히 개입했다. 이방호 당시 사무총장이 여러차례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았다. 공천을 받은 사람들이나 탈락한 사람들이나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선출을 앞두고 후보들이 청와대의 사전 결재를 받느라고 바쁘다. 원내대표를 노리는 홍준표, 정의화 의원이나, 정책위의장 물망에 오른 임태희 의원이나 굳이 이런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대신 ‘결재’라고 하지는 않고 ‘조율’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강재섭 대표는 지난 2일 주례회동에서 이 대통령에게 원내대표 경선(5월22일)과 전당대회(7월3일) 일정을 보고했다. 이 대통령은 “당의 일정들은 당에서 알아서 잘 해 달라”고 말했다. 당대표가 정당의 일정을 사실상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정도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영향력은 18대 국회 국회의장과 여당 몫 부의장을 누가 맡을 것인지, 국회 상임위원장을 누가 맡을 것인지, 심지어 7월3일 전당대회에서 누가 대표를 맡을 것인지에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현상은 과거 ‘제왕적 총재’,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퇴영적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근본적으로는 제왕적 총재 시스템이 무너진 뒤 새로운 당청관계의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추억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어쨌든 한나라당의 내부 갈등과 불안정성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비틀린 당청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나라당 당헌 7 조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동안에는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이른바 ‘당권-대권 분리’ 조항이다. 그런가 하면 당헌 8조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하며 그 결과에 대하여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굳이 해석하자면 ‘당정일체’를 하라는 얘긴데, 대통령이 당에 지시를 할 수 있는 권한은 역시 없다. 당이 알아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도우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행위는 엄밀히 따지면 당헌을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한나라당 내부의 견해는 크게 둘로 갈려 있다.
한나라당 당헌은 박근혜 대표 시절이던 2005년 11월에 만들어졌다.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인사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의 일에 간섭하는 것이 명백한 당헌 위반이라고 비판한다. 심지어 기자들에게 “왜 기사를 쓰지 않느냐”고 주문할 정도다.
그러나 당시 당헌 개정을 주도했던 홍준표 의원은 “대통령은 당의 어른이므로 대통령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다른 견해를 밝히고 있다. 비현실적인 당헌을 개정해 대통령에게 당 문제에 개입할 권한을 부여하자는 주장도 있다.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이 대선 직후 당헌 개정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당내에서 역풍이 일자 입을 다물고 있지만, 최근 그를 만난 인사들은 그가 ‘소신’을 바꾸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의원은 “당직과 정부직과 청와대의 인선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당내에서는 임 의원의 말을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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