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총장서 ‘연기’ 요청 전화…청와대 긴급회의뒤 제본 중단 결정
정부가 2일 밤 미국산 쇠고기 위생조건 관보 게재(장관 고시)를 유보한 것은 성난 민심에 위기감을 느낀 한나라당 의원들의 전방위 압박에서 비롯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장관 고시 관보 게재를 하루 앞둔 이날 오전부터 정부 쪽에 재협상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소장파의 선두주자 격인 원희룡·남경필 의원이 치고 나갔다. 원 의원은 <에스비에스> 라디오에 출연해 “국민의 안전을 위해 모든 조처를 취하겠다고 약속한 상태에서 장관 고시를 강행하겠다는 것은 소통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실질적인 쇠고기 재협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남 의원도 <문화방송> 라디오에 나와 “쇠고기 고시를 (내일) 관보에 게재하는 것을 늦춰야 할 것”이라며 “재협상이든 추가협상이든 미국을 설득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대표가 친박 복당과 개각 등으로 정국 수습책의 가닥을 잡았지만, 오후에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관보 게재 유보”와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며 당 지도부와 정부를 더욱 압박했다.
의원총회에서 모두 20명이 자유발언에 나서 전면적인 국정쇄신과 강도 높은 민심수습책을 요구했다. 이들 가운데 남경필·권영진·정태근·김성식·함영철·강석호·김성태 의원 등 7명은 “정부가 국민을 이기려 해선 안 된다”며 관보 게재 유보, 미국과의 재협상을 주문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권영진 의원은 “더 급한 쇠고기 문제를 먼저 수습한 뒤 국정쇄신으로 가야 한다”며 “정부가 재협상이든 추가협상이든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또다른 측근인 정태근 의원도 “국가 신인도보다 국민의 신뢰가 우선”이라며 재협상을 요구했고, 다른 초선 의원들도 합세했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자유토론 뒤 홍준표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의견이 최대한 관철되도록 청와대에 전하겠다”고 밝혔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의총장에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관보 게재 유보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까지도 관보 게재를 예정대로 강행하겠다던 청와대와 정부의 기류도 오후 들어 변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경제·정무·민정 등 관련 수석실은 바쁘게 움직였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오후 2시께부터 정무수석실 참모들이 관보 게재 유보 의견을 개진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한나라당에서 농식품부에 관보 게재 유보를 공식 요청한 직후인 오후 5시께 류우익 대통령실장 주재로 긴급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차질이 생기면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상관없이 자동차 등 미국과의 무역에서 우리나라에 상당한 피해가 올 수 있지만, 이 시점에서 분노한 국민들에게 져줘야 한다”는 관보 게재 유보 주장이 대세를 형성했다. 청와대는 곧바로 농식품부에 이런 방침을 전달했고, 행정안전부도 관보 제본 작업을 중단했다.
신승근 이유주현 황준범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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