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왼쪽은 임태희 정책위원장.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파업대책 말만 앞섰다 금세 발빼기
유가 보조금도 당안팎서 미봉책 비판
유가 보조금도 당안팎서 미봉책 비판
‘촛불’에 놀란 한나라당이 “서민을 위한 정책”을 강조하고 나섰으나, 막상 그 실행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있다. 오히려 보수진영으로부터 “민심수습책을 급조하다 보니, 포퓰리즘적인 대책만 내놓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갈등의 두 당사자 모두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화물연대 파업 대책은 한나라당이 뒷걸음질 친 대표적 사례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우리 헌법(119조2항)은 사회적 시장경제 논리를 천명하고 있다”며 “중소기업, 서민, 힘없는 사람도 살려면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하며 이 원칙은 화물연대 파업 사태에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가 지목한 119조2항은 국민경제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개입과 규제를 가능하게 만든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그동안 시장주의자들로부터 개헌이 될 경우 반드시 고쳐져야 하는 ‘독소 조항’이라는 공격을 받아왔다. 홍 원내대표는 또 화물연대 파업 사태와 관련해, 문제의 구조적 해결을 위해 30~40%의 중간 이윤을 가져가는 ‘거간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화주의 양보를 강조하기도 했다. 화물연대 운수업자들로서는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킬 만한 획기적인 대책이 나올 거라는 희망을 품게 한 셈이다.
실제로 한나라당 지도부는 다음날인 16일 아침 직접 화물연대 지도부를 만나 대책을 설명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이날 오후 갑자기 “모든 건 정부에 일임하고 우린 빠지겠다”며 물러섰다. 화물연대가 요구한 △유가보조금 기준 인하 △노조 인정 △표준요율제 어느 하나 쉽게 들어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법까지 거론하며 벌였던 ‘말의 성찬’에 비하면, 그 성과가 미약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셈이다.
특히 화물차 차주들의 노동자 자격 인정문제는 대기업 소유주인 정몽준 의원도 “화물차 차주는 노동자”라고 주장하는데, 한나라당 지도부는 일고의 고려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이명박 정권의 핵심 정책인 한반도 대운하와 공기업 민영화 등을 후순위 정책과제로 미루겠다는 한나라당 약속의 신뢰도에도 금이 가고 있다. 한나라당 정책 기조의 변화가 촛불 민심에 밀려 ‘땜질용’으로 나온 것일 뿐, 진정성과 실천력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렇게 갈지자 행보를 보이자, 오히려 당 안팎에서 보수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류세 환급 문제에 대해 한 중진 의원은 “급하다고 해서 돈을 나눠주는 것은 당장은 인기가 있을지 몰라도 기름값 급등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보다 더욱 형편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은 무슨 예산으로 지원해주느냐”고 비판했다. 공기업 민영화 연기에 대해서 영남지역의 한 의원은 “당정청이 민영화를 추진하다가 구체적인 시기나 방안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무작정 연기하는 것은 혼란을 가중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열린 국제경제학회 토론회에선 “정부와 한나라당이 단기처방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언행의 불일치가 불러온 ‘화’인 셈이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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