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DJ 비난에 즉각 반격 “충정어린 고언을 비하”
평소 언행이 신중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례없이 강한 톤으로 민주주의 회복을 호소하고 나선 것은 지난 1년반 동안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을 지켜보며 켜켜이 쌓인 울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12일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은 그냥 튀어나온 게 아니다”라며 “지난해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동교동 자택을 찾아왔을 때부터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 위기를 3대 위기로 꼽으며 시국을 매우 걱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뒤 1년반이 지나도록 전화로라도 국정 운영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던 데 대해 (김 전 대통령이) 서운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 전 대통령이 이처럼 격정을 토로하게 된 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던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권양숙씨를 만나 오열하기도 했다. 그는 6·10 범국민대회 때 경찰이 방패로 시민을 찍어누르는 동영상이 보도된 것을 보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이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인데도 여권이 이를 ‘시대착오적’이라며 깎아내리자 민주당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민주주의가 풍전등화에 처해 있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유린되고, 남북관계는 파탄나고, 서민들은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데도 깊은 성찰과 사죄 없이 충정 어린 고언을 저질 발언으로 비하하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박지원 의원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생각할 때는 김 전 대통령의 말씀이 ‘분열’이라고 했지만, 자신들이 언제는 ‘통합의 정치’를 했냐”며 “‘제 탓이오’가 아니라 모두가 ‘남의 탓’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세균 대표도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김 전 대통령께서 하실 말씀을 잘하셨다고 생각한다”며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자들이 김 전 대통령님의 충언에 대해 경청하고 실천하는 노력을 해주실 것”을 요구했다.
이지안 진보신당 부대변인은 “이명박 정부가 초래한 남북관계 악화와 현 시국 상황을 걱정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은 한마디도 틀린 게 없지 않은가”라고 되물은 뒤 “약이 되는 쓴소리에 정부 여당이 귀 닫고 있을수록 이 정권의 임기는 더욱 짧아질 것임을 한나라당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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