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가 17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부동산 형성과정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면죄부 청문회 왜?
위장전입·부동산투기 ‘낯뜨거운 이중잣대’…청문회 없이 임명도
위장전입·부동산투기 ‘낯뜨거운 이중잣대’…청문회 없이 임명도
인사청문회가 모든 국무위원 후보자로 확대된 것은 2006년이다. 2005년 이헌재 당시 부총리의 위장전입 등 인사파동이 불거지면서, 2006년부터 총리와 대법원장·감사원장 등 일부에 한정됐던 청문회 대상이 전체 국무위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 철저한 검증을 통해 적절한 인물이 등용되도록 하자는 인사청문회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청문회 자체가 ‘통과의례’로 굳어지거나 ‘여당은 찬성, 야당은 반대’라는 틀이 이어지면서, 국회 스스로 행정부 견제 권한을 약화시키고 청문회를 무력화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 편들기와 이중잣대
민일영 대법관과 이귀남 법무부장관·임태희 노동부장관 후보자는 모두 위장전입이 확인됐고, 최경환 지식경제부장관 후보자는 이중공제·소득세 탈루, 주호영 특임장관 후보자는 ‘다운계약서’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여당은 “직무수행과는 큰 관련이 없다”며 덮기에 급급하다. 한나라당은 민영일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뒤 열린 의원총회에서 민 후보자에 대해 “위장전입 등 사소한 허물이 있지만 대법관 직무를 집행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의견을 모았다. 예전 김대중 정부에서 장상 총리 후보자, 장대환 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을 비판하며 인준안을 부결시킨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다. 여당의 일방적인 편들기 역시 청문회를 무력화시키는 요인이다. 지난 15일 소득 이중공제와 부적절한 후원금 논란이 불거진 최경환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정훈 의원은 “최근 일부 언론에서 증거도 없는 묻지마식 허위폭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며 “여긴 장관 후보자 검증 자리이지 인신공격의 장이 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고, 김기현 의원은 최 후보자의 강남 아파트 투기 의혹에 대해 “정부에서는 좀 부동산을 사라고 권장하던 시절이었다”며 노골적인 감싸기에 나섰다.
■ ‘반대해도 그만’ 통과의례
인사청문회를 하나의 ‘요식행위’로 여기는 현 정부의 태도 역시 청문회 파행을 부추기고 있다. 민주당·자유선진당·민주노동당 등 야 3당은 17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자료 제출을 촉구했다.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병역·세금탈루 등 각종 의혹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주장이다. 노영민 민주당 대변인은 “인사청문회 요구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과 삼권분립 원칙에 따른 인사청문회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청문회 무시 현상은 청문회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단순한 통과의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기 내각을 구성하면서, 야당이 부적격 판정을 내리거나 인사청문회 파행 운영으로 보고서가 아예 채택되지 않았던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임명을 강행했다. 또 지난해 7월 전재희 보건복지부·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경우, 인사청문회가 아예 열리지 않았지만 그대로 장관에 임명됐다.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방지하도록 한 청문회 도입 취지가 무색한 대목이다.
■ “청문회 제도 근본적 검토 해야”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인사청문회 제도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인사청문회가 짧은 기간에 집중되면서 충분한 검증이 쉽지 않다는 점이 꼽힌다. 현재 인사청문회법은 “위원회는 임명동의안이 회부된 날로부터 15일 이내 청문회를 마치되, 기간도 3일 이내로 한다”고 정해 놓았다. 그러나 자료제출과 증인출석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엔 빠듯하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 ‘9·3 개각’이 이뤄진 뒤, 7일 여야 합의로 14일부터 청문회 일정이 잡혔으니, 실제 준비기간은 일주일 남짓인 셈이다.
객관화된 검증 기준을 통해 후보자 지명 전에 사전검증을 철저히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위장전입·세금탈루 등 기본적인 도덕성 검증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이 공직 후보자가 되고 이에 대한 검증이 주요 이슈가 되는 것은 사회적 낭비라는 주장이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정부는 고위 공직 후보자의 검증 항목을 구체화한 ‘고위 공직자 인사검증 법률안’을 제출했으나, 회기가 만료돼 폐기된 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회의 인사청문 결과를 존중하는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인사청문회의 도입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팀장은 “대통령이 청문회 결과를 존중하지 않는데, 인사청문회가 제대로 치러지길 바라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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