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의석비율 따라 배분해 집권당 견제
여당 법안 통과안되자 야당 상임위장 책임론
“미국은 필리버스터 전통 유지해 소수당 존중”
여당 법안 통과안되자 야당 상임위장 책임론
“미국은 필리버스터 전통 유지해 소수당 존중”
국회 상임위원장을 여야 정당이 의석 비율로 나누는 전통은 매우 ‘한국적’이다. 1988년 13대 총선 때부터 시작됐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당시 여당 민주정의당은 불과 125석밖에 얻지 못했다. 평화민주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야3당이 힘을 합할 경우 여당이면서도 상임위원장을 한 석도 가질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여소야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민주정의당이 야당에 제안한 게 의석 비율에 따른 상임위원장 배분이었다.
상임위원장 배분 전통은 이후 정권 교체를 겪으면서도 20여년 동안 국회에서 지켜져 왔다. ‘상임위원장은 국회 본회의에서 선거로 뽑는다’고 국회법에 적시돼 있는데도 이런 관행을 유지해온 까닭은 여야 모두 다수당 독식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의원은 13일 “선진국에는 이런 제도가 있네 없네 하지만 우리 특유의 정치 문화가 있다”며 “상임위장 배분 제도는 집권당의 일방통행을 견제하는 데 지금까지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고 평가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상임위원장의 여당 독식’을 추진하는 이유로 ‘책임정치’를 내세운다. 권한을 주고 책임을 물으라는 논리다. 여당 의원들은 그동안 언론관련법 등을 강행 처리할 때 “18대 총선에서 국민들이 찍어준 이유는 우리 뜻대로 정책을 추진해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결과는 다음 선거에서 심판받으면 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다수결 원리에 따른 미국 등 선진국의 상임위원장 배분 제도도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 제도의 배경이나 전통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는 “미국의 국회 운영이 전반적으로 다수결로 이뤄지는 것은 맞다”며 “하지만 아무리 다수당이 밀어붙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전통을 깰 수 없기 때문에 소수당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부시 대통령 시절 필리버스터 제도를 없애려고 했지만 공화당 유력 의원들조차 반대하는 등 역풍이 불어 결국 백악관은 이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거수기 노릇만 하는 한국적 여당 풍토와 소수 정파에 대한 존중 및 합의 전통이 강한 미국을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느닷없이 ‘상임위원장 독식론’을 들고 나온 것은 여당이 추진하는 각종 법안·예산이 지지부진한 원인을 야당 소속 상임위원장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안 원내대표는 국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펼치기 직전에, 법안 통과가 안 되고 있는 환경노동위원회·교육과학기술위원회를 지목하며 추미애 환노위원장(민주당)과 이종걸 교과위원장(민주당)의 사퇴를 주장한 바 있다.
한나라당이 법안을 발의해도 통과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수당의 횡포’라는 여론에 부닥칠 게 뻔하고, 야당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게임의 룰’인 국회법은 여야가 합의해야 하는 만큼 야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고칠 수는 없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야당이 순순히 타협할 리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유주현 성연철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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