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사찰 의혹 흐름
뒷조사 지시 ‘윗선’ 없나
이인규-이영호-박영준 넘어선 ‘몸통’ 있을듯
민주 “의혹 중심에 이상득…성역없는 수사를”
이인규-이영호-박영준 넘어선 ‘몸통’ 있을듯
민주 “의혹 중심에 이상득…성역없는 수사를”
남경필 의원의 부인에 대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이 확인된 데 이어 정두언, 정태근 의원에 대한 ‘표적 정치사찰’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를 지시하고 통제한 ‘윗선’의 정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남 의원 사건의 ‘배후’와 관련해 일차적이고 직접적으로 지목되는 인물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인규(54) 전 공직윤리지원관이다. 그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을 공식적으로 직접 지휘, 통제한 당사자다. 정부 각 기관에서 파견된 지원관실 실무자들이 이 전 지원관의 지시 없이 여당 중진 의원의 주변을 캤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2급 공무원인 이 전 지원관이 여당의 4선 중진 의원에 대한 뒷조사를 지시한 ‘최종 지휘자’라고 보는 건 상식적으로 설득력이 약하다. 이 전 지원관이 누군가 ‘윗선’의 지시를 받고 사찰에 착수하고, 그 내용을 보고했을 것이라는 게 총리실과 정치권 주변의 관측이다.
이 전 지원관한테서 수시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영호(46)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도 ‘용의 선상’에 올라 있다. 조직도상 이 전 지원관의 직속 상관은 권태신 총리실장이지만, 권 실장이 김종익씨 사찰에 대해 전혀 보고받지 못했던 점을 고려하면 여당 의원에 대한 사찰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본인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영포라인’과 관련이 깊은 박영준(50) 국무총리실 국무차장도 야당의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다. 박 차장과 이 전 비서관 등은 2008년 8월부터 1년 가까이 서울 강남의 메리어트호텔에서 정례적으로 모여 공기업 인사 등을 논의했으며, 이 자리에서 이인규 전 지원관의 보고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눈여겨볼 대목은 정두언 의원에 대한 사찰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아니라 국정원 직원 이아무개씨가 벌였다는 점이다. 정태근 의원 주변에 대한 사찰도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아닌 다른 기관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각각 다른 3개의 기관이 개입한 정치인 사찰을 총괄적으로 지휘할 만큼 힘있는 ‘윗선 실세’가 따로 있는 게 아니냐는 추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이인규-이영호-박영준 라인을 넘어선 ‘윗선’에 대한 의혹이 나오는 것이다.
‘윗선 실세’와 관련해 민주당은 23일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직접 겨냥했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평지풍파의 중심에 이상득 의원이 있다. 검찰이 이 의원을 포함해서 성역 없는 수사를 신속하게 해달라”며 “검찰이 성역 없는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국정조사나 특검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경필 의원은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청와대까지 간접적으로 거론했다. 그는 ‘집권 여당의 4선 의원에 대한 사찰을 청와대가 모를 리 없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런 (추측) 부분까지 다 성역 없이 검찰에서 수사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여권 핵심부의 ‘실세’가 사찰을 직접 지시했다기보다는 이 인사에게 잘 보이려는 일부 인사들의 ‘과잉 충성’에서 비롯됐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영남지역 초선 의원은 “여권 내 일부 인사들이 실세 쪽에 대한 과도한 충성심에서 정치인 사찰에 나섰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입 가리고…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이 23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이야기하던 중 잠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다. 연합뉴스
목청 높이고…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23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남경필·정두언·정태근 의원 등 여당 의원 사찰 논란과 관련해 “책임자 문책이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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