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조준호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비례대표 경선 부정의혹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위기의 통합진보당
현장투표 상당수 부정 존재
온라인투표는 신뢰성 잃어
투표중 소스코드 네번 수정
어떤 작업했는지 확인 못해
동일 IP서 중복투표 문제는
한 컴퓨터서 여럿 투표가능성
현장투표 상당수 부정 존재
온라인투표는 신뢰성 잃어
투표중 소스코드 네번 수정
어떤 작업했는지 확인 못해
동일 IP서 중복투표 문제는
한 컴퓨터서 여럿 투표가능성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 조사결과
통합진보당이 2일 발표한 비례대표 경선 부정 진상조사 결과는 현장투표는 ‘조작’, 온라인투표는 ‘관리 부실로 인한 조작 가능성’으로 정리된다.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 경선은 당원 5455명(14.8%)이 참여한 현장투표와 3만5512명(85.2%)이 참여한 온라인투표로 나눠 지난 3월14~18일 치러졌다.
조준호 진보당 비례대표 진상조사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프라인(현장투표)의 경우는 조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부정투표가 존재했다. 온라인은 ‘형상관리 프로그램’(시스템 관리 작업을 어떻게 했는지 기록하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지 않아 그게(조작이) 충분히 가능한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진상조사 결과를 보면 당원 다수가 참여한 온라인투표는 ‘기초공사’부터 부실했다. 무엇보다 온라인투표에 관해선 선거 관련 규정이 없었다. 기표 오류로 투표가 중단되고 투표 데이터를 직접 수정하는 일도 벌어졌다. 선거관리자 말고는 투표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보안유지 장치도 없었다. 이 때문에 선거관리 업무와 무관한 당직자의 요구로 선거관리 업체가 네 차례나 투표 프로그램의 ‘설계도’나 마찬가지인 소스코드를 열어봤다.
이의엽 진보당 공동정책위의장은 “소스코드를 열어보는 건 화면에서 프로그램을 수정하거나, 프로그램의 로직을 보거나, 암호화된 데이터 부분에 접근하는 등 3가지 경우로 볼 수 있는데, (이번의 의혹은) 어떤 경우로 접근했는지 사실관계가 모호하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수정을 요구한 당직자는 “(프로그램에) 들어가기 편하게 수정해달라고 했다. 관례적으로 했다”고 진상조사위에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진상조사위는 이 해명의 진위를 확인하지 못했다. 시스템 관리 작업 현황이 기록된 형상관리 프로그램이 깔려 있지 않은 탓에 실제로 소스코드를 열어 무슨 작업을 어떻게 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투표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소스코드를 열어 데이터를 조작했더라도 진실을 밝혀낼 수가 없는 셈이다. 진상조사위가 “온라인투표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잃었다”고 평가한 것은 이 때문이다.
같은 아이피(IP)에서 여러 차례 투표가 이뤄진 경우, 당원이 아닌 사람이 투표에 참여한 사례도 드러났다. 전체 아이피가 아니라 중복된 아이피 가운데 샘플 100개만 골라 조사한 결과이기 때문에, 대규모로 중복·대리투표나 동원투표가 벌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실제로 진상조사위는 일부에서 대리투표 등 부정투표 사례를 확인했지만, 이것이 어떤 규모로 저질러졌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조 위원장은 “현장이나 사업장에서는 컴퓨터 하나가 있어서 (여러 명이) 쭉 와서 함께 할 수도 있으니, 같은 아이피에서 다수의 투표가 진행된 것을 꼭 부정이라고는 볼 수 없다. 당원이 아닌 경우도 더 자세히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투표 조사 결과에서는 투표 관리자의 사인이나 직인이 없는 투표용지, 일련번호표를 떼지 않은 투표용지, 한꺼번에 묶음으로 들어간 투표용지 등이 확인됐다. 투표 마감시간 뒤에도 온라인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현장투표가 다수 집계된 사례, 동일인의 필체가 이어져 있는 등 대리투표로 추정되는 사례도 드러났다. 투표소 관리가 제대로 안 된 것이다. 이 조사는 전체 투표소의 3분의 1인 70여곳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진상조사위는 이 가운데 상당수에서 이런 부정투표가 저질러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통합진보당 누리집에는 한 당원이 “한 투표소의 임시 선거사무원은 당원도 아닌 현장 노동조합 간사였다. 본인 확인 및 신분증 확인도 없었고, 인터넷투표 확인도 말로만 이뤄졌다”며 대리·중복투표 의혹을 제기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조 위원장은 “(확인해야 하는 투표용지의) 양이 많아서 (진상조사위가) 다 조사는 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례가 나왔다”며 “저희는 선거의 정당성 확보가 어렵겠다고 진단한다”고 말했다. 진보당은 현장투표 당시에도 부정투표 논란으로 투표함 7개의 611표를 무효처리한 바 있다.
진상조사위는 당원 입당과 탈당, 당권 인정 등 당원관리 업무를 맡은 당 사무총국의 부실함, 당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무능을 이번 부정선거의 한 원인으로 지적했다. “(온라인투표에서는) 적정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업체와 수의계약하고, 선관위원이 아닌 사무총국 직원의 임의적 판단과 지시로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수정해 공정성을 보장할 수 없는 선거가 진행됐다. 현장투표에서는 중앙선관위의 역할이 지역 투표소에서 보고한 결과를 집계하는 역할에 머물러 다양한 부정·부실 선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의엽 정책위의장은 “당시 모든 간부들이 지역구에 출마하는 등 선거관리 업무에 역량을 투입할 상황이 안 됐다. 선관위 규정대로 (투표가) 엄격하게 이뤄지지 않았지만, 고의로 이걸(부정선거를) 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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