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의 재구성] <하>이념 경직성 탈피해야
코리아연방공화국 논란 등 국민공감 못 얻어
평등·생태·평화·연대 등 새로운 가치 구현을
무상급식등 보편적 복지 흐름엔 긍정적 역할
코리아연방공화국 논란 등 국민공감 못 얻어
평등·생태·평화·연대 등 새로운 가치 구현을
무상급식등 보편적 복지 흐름엔 긍정적 역할
“민주노동당은 서민대중과 동떨어지고 대안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진보담론은 ‘화석화’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핵심 가치로 평등, 생태, 평화, 연대를 제안한다.”
2008년 2월24일, 당시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노회찬·심상정 전 의원이 ‘진보신당 창당을 위한 원탁회의’를 제안하면서 낸 글의 일부다. 이들은 민주노동당 안에서 진보를 혁신하고 재구성하자던 주장이 거부되자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평등·생태·평화·연대’라는 진보신당의 지향은 민주노동당이 이런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현 통합진보당의 주축인 민주노동당은 2000년 1월 창당 이후부터 무상급식·무상의료 등 보편적 복지 확대를 위한 운동을 꾸준히 벌였다. 전국적인 급식조례제정운동은 2010년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운 기초·광역단체장과 교육감의 대거 당선으로 결실을 얻었다.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제 도입, 저소득층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임대주택법과 영세 자영업자 보호를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고금리와 불법사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리 상한을 40%로 제한한 이자제한법 제정 등도 민주노동당의 정책 성과다. 민주통합당이 보편적 복지를 당헌에 못박고, 새누리당까지 경제 민주화를 당 강령에 넣을 정도로 변화하는 데 ‘민주노동당표 정책’들은 선도적 구실을 했다.
이런 정책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 지지율은 하락했고 민심과 더욱 멀어져 갔다. 그 원인은 끊이지 않은 당 내부 분열 탓이 컸다. 자주파(NL)와 평등파(PD)는 정책을 놓고 생산적 토론을 벌이기보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소모적, 분열적 갈등으로 대립하기 일쑤였다. 여기에 북한을 바라보는 두 정파의 시각차는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고 종북주의 논란과 맞물리면서 결국 분당의 계기가 됐다.
2007년 대선 당시 벌어진 ‘코리아연방공화국’ 논란이 대표적이다.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는 북한과 ‘1국가 2체제’로 통일하자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을 첫 공약으로 발표했다. 그 당시는 경제 문제, 먹고사는 문제가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 주요 당직과 선거캠프를 장악한 자주파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대선공약 1번으로 밀어붙였다. 공약을 담당한 정책연구원들을 비롯해 거세게 당내 반발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코리아연방공화국은 방향성만 제시하는 ‘국가비전’ 형태로 축소되는 듯했다. 그런데 당시 사무총장이던 김선동 의원(현재 당권파)이 당 지도부와 상의 없이 대선 포스터에 ‘코리아연방공화국 건설’을 대선 슬로건으로 적어 인쇄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민주노동당은 이 포스터를 모두 폐기했지만, 당내 논란은 한동안 지속됐다.
2006년 최기영 당시 사무부총장 등이 당원 300여명의 정보를 북한에 넘긴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기소된 ‘일심회 사건’을 두고서도 자주파와 평등파는 격하게 대립했다. 당시 평등파 지도부와 평당원들은 당의 정보를 북한에 넘긴 것은 해당 행위이므로 법적인 처벌과는 별도로, 당에서 제명하고 출당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주파는 이를 국가보안법 때문에 빚어진 진보정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반 국민 눈높이와 다른 자주파의 대북 인식도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사태 때 민주노동당은 ‘유감’을 표명하는 데 그쳤다. ‘핵실험의 원인은 미국의 대북정책 탓’이라는 자주파의 인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은 한반도 비핵화를 당 강령으로 삼았지만, 자주파는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두 정파의 이런 대립의 밑바닥엔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차가 놓여 있었다. 자주파는 1980년대 운동권 내부에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분단에서 비롯됐으며, 이 문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여겼던 이들이다. 보수 세력이 오래 집권하면서 ‘안보’를 내세워 냉전 논리만 강요했기 때문에 이들의 신념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주파 내부의 한 인사는 “보수세력이 북한 문제를 국내정치에 어떻게 이용했는지 오랫동안 지켜봤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북한) 방어자세가 습성으로 남아 있다. 게다가 북한에 관한 태도는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판단해야 하는데,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상 검증’을 당하다시피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 인사는 “3대 세습 이후엔 (자주파) 내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무조건 방어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 많이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는 ‘민주노동당 분당 과정 연구’라는 논문에서 “대안정당은 새롭게 재구성된 노동의 이해와 열정에 기반해 평화, 생태, 인권 문제를 적극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진보적 가치와 이념을 혁신적으로 재구성하고, 진보적 가치를 대중화·다양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다양한 진보적 가치를 포괄해내면서 진정한 진보정당으로 거듭나려면 내부의 이념 경직성을 탈피하고, 북한을 바라보는 인식에서도 국민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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