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한목소리 “적절치 않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애국가를 국가로 볼 수 없다”는 발언이 온라인 상에서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고 있다. 발언 자체에 대한 비난도 있지만, 이 의원이 국면 전환을 위해 의도적으로 발언했다는 ‘사전 의도설’도 나오고 있다. 이와 달리 애국가의 ‘법적 지위’에 대한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진보·보수, 여야 지지를 넘어 “이 의원의 발언은 적절치 않다”는 반응이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관련해 당 안팎의 사퇴 압력에도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더욱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또 진보세력이 ‘종북논란’에 의해 공격받고 있는 현 시국에 기름을 부었다는 의견이 다수다. 트위터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진보논객들도 이번 이석기 의원의 발언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불필요한 구설수를 사전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이 의원이 발언이 알려진 15일 저녁, 자신의 트위터에(@unheim)에 “이석기, ‘애국가는 대한민국 국가가 아니다’ 진정한 국가는 ‘아리랑’이라고. 아리랑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왕이면 힘찬 걸루 합시다. 날좀 보쏘, 날좀 보쏘, 날 좀 보쏘…”라며 냉소적인 발언을 올렸다.
이 의원의 발언이 ‘의도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부정선거’와 ‘종북 논란’으로 수세에 몰린 이 의원이 국면전환용으로 ‘애국가’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한인섭(@truthtrail)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6일 “이석기는 보수에게 떡밥을 던져주면서 자신을 공격하게 한다. 보수는 그 떡밥으로 충전하고, 이석기는 피해자라는 동정을 얻어 힘을 모은다”라며 이 의원 발언에 의혹을 제기했다.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 집행위원인 고은태(@GoEuntae) 중부대 교수는 “이석기씨 입장에서야 부정선거 관련해서 문제가 되는 것보다야 태극기나 종북종미 논란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훨씬 폼나겠지요”라며 한 교수 의견에 힘을 실었다. 진중권 교수도 한 교수의 발언을 리트위트 하면서 사전 의도설을 확산시켰다.
보수세력은 아예 애국가 발언의 사전 의도설을 기정 사실화했다. 한 보수 인터넷 언론은 17일 “이석기 의원이 종북논란을 부추겨 ‘부정 경선’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장문의 분석기사를 실었다.
한편, ‘애국가의 법적 지위’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2010년 7월 제정된 ‘국민의례규정’에서 법적 근거를 부여받았다고 보도했으나, ‘애국가’가 법적으로 명문화된 것은 1984년에 제정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이 처음이다.
한국에서는 조선말 개화기 이후부터 ‘애국가’란 말을 사용했다. 근대적 형식의 애국가는 1902년 대한제국에서 만들었다. 현재의 애국가는 1907년을 전후로 처음 가사의 기틀이 잡혔다. 곡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었다. 광복 이후까지 이 스코틀랜드 민요의 선율로 애국가를 불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안익태가 1935년 작곡한 애국가가 교과서에 실리며 전국적으로 불리게 됐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가 국가에서 지정한 것이란 법적 근거는 없는 상태다. 일종의 관습법이 돼버린 것이다. ‘국기’의 경우 현행법(대한민국국기법)으로 그 정의와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했지만 국가에 관해선 어떠한 법률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앞서 언급한 ‘국민의례 규정’ 4조 2항의 ‘애국가 제창 : 1절부터 4절까지 모두 제창하거나 1절만 제창’이란 부분에서 현재 4절로 이루어진 애국가일 것이란 유추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 국민의례 규정에도 국기에 대한 경례곡 등의 악보는 별표로 첨부돼있으나, 애국가의 경우 악보와 같은 별표는 찾아볼 수 없다.
이석기 의원의 의도와 무관하게, 애국가가 국가라고 할지라도 이를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실적으로 일본의 기미가요 제창 강요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의 박경신 교수는 1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90년대부터 일부 진보 집단에서 ‘민중의례’라는 형식으로 애국가를 생략하기 시작했다”며 “진보진영 내부에서 많은 논의를 거친 문제”라고 말했다. 박교수는 “애국가나 국기 등 국가를 상징하는 것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싫다고 말할 자유는 분명 있어야 한다”며 “그것이 국가나 민족 자체를 싫어하는 ‘비애국’으로 매도되는 것은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박교수는 “지금 상황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누가 말하느냐가 관심사다. 발언의 당사자가 이석기 의원이기 때문에 논란이 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정국·정환봉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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