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국회·정당

대충대충 ‘묻지마 법안’
질 떨어지는 국회

등록 2013-04-21 17:11

법안 발의 의정활동 평가, ‘실적쌓기용’ 경쟁
“같은 의원께서 같은 법률의 여러개 개정안을 냈을 때는 (법안 제출) 날짜를 봐야 한다. 우리 위원회에 제출된 법안들에 대해 고유번호를 줘서 번호만으로도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제안드린다.”

지난 19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했다.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발의한 동일한 이름의 법률안들이 너무 많아 의원들조차 예전에 심의를 마쳤던 법률안인지, 해당 법률안 내용이 어땠는지 선뜻 확인할 수 없는 ‘고통’이 크다는 것이었다. 김 의원은 법률안들을 손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법안마다 ‘꼬리표’(고유번호)를 달자고 제안했다.

국회의원조차 어떤 내용인지 구별하기도 힘든, 비슷한 법안이 쏟아지내는 배경에는 법안 발의 건수로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분위기에서 의원 스스로 이른바 ‘실적쌓기용’ 법안을 경쟁적으로 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 양적인 측면에서 ‘의원입법’은 폭발적으로 증가해왔다. 11대 국회(1981~85)에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202건에 불과했다. 정부제출법안 287건보다도 적었다. 12대(1985~88) 역시 의원발의 법안은 211건에 머물렀다. 87년 민주화와 헌법 개정은 의원발의 법안 증가의 분기점이 됐다. ‘거수기 국회’ ‘통법부’라는 오명을 씻으려는 듯 13대(1988~92) 국회에서는 직전 국회보다 2배 이상 많은 570건의 의원발의 법안들이 쏟아졌다. 14대(1992~96) 국회에서는 321건으로 주춤하기는 했지만, 15대(1996~2000) 1144건, 16대(2000~2004) 1912건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더니 17대(2004~2008)때는 6387건으로 치솟았다.

이렇게 증가한 의원발의 법안 수는 18대(2008~2012) 국회에서 1만건을 넘어섰다. 임기 4년 동안 의원들은 모두 1만2220건의 의안을 내놓았다. 정부제출안 1693건에 견주면 7배 이상 많다. 11대 국회와 비교하면 무려 60배가 늘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통계를 보면, 현 19대(2012~)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4월19일 현재 4058건에 이른다.

문제는 법안의 양적 증가가 법안의 품질까지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국회 입법 발전 방향 세미나’에서 법안 발의 건수를 늘이려는 의원들이 ‘부실 법안’ ‘졸속 법안’ ‘표절 법안’ ‘묻지마 법안’ ‘중복 법안’을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법안 발의 건수를 늘이려고 몇 개 조문만을 고쳐서 개정법안을 제출하거나 다른 법안을 베낀 듯한 법안을 제출한다. 다른 법안과 거의 동일한 내용의 법안을 중복해서 제출한다”고 지적했다. 관련 부처와 논의하고 법제처 심사 등을 거치는 정부 제출 법안과 달리 의원입법은 대동소이한 법안이라도 조금만 내용이 다를 경우 ‘중복 제출’을 막을 제도적 장치는 없다.

김종훈 의원은 19일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국립묘지 운영 법률’만해도 같은 법률 이름 밑에 4분의 이름의 의원이 각각 다른 내용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날 정무위에는 김성곤·박대동·노회찬·이찬열 의원이 내놓은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과 상임위원장이 대안으로 내놓은 개정안 등 모두 5건의 동일 이름 법안이 회의에 올라왔다. 이 가운데 이찬열 의원 등 21명(2012년 8월 발의)과 노회찬 의원 등 13명(2013년 2월 발의)이 내놓은 개정안은 ‘소방공무원의 국립묘지 안장 대상 확대’를 주요 개정내용으로 한다. 사실상 같은 법안이 6개월 사이에 또 올라온 것이다. 지난 1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소위원회를 통과한 ‘대체휴일제’ 법안 역시 거의 동일한 내용의 법안 6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국회에 제출됐다.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 보좌관은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매일 아침 입법 자료를 내놓는데 의원실마다 이 자료를 가지고 법안을 제출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법안 발의에 필요한 내용들을 검토한 뒤 국회 법제실에 문의하면 ‘일찌감치 다른 의원실에서 법안을 올렸다’는 말이 돌아온다. 검토도 없이 바로 법안을 발의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얘기된다 싶으면 ‘묻지마 발의’를 한다는 것이다. 이 보좌관은 “요즘은 정부 입법보다 절차가 훨씬 간단한 의원 입법이 많은데, 의원 입법 가운데 상당부분은 정부 입법이다. 다른 의원실에서 그럴 듯한 법안을 제출하면 모시고 있는 의원이 ‘왜 우리는 그런 법안 (관련 부처에서) 못 물어오냐’고 쪼아 댄다”고 했다. 국회의원을 통한 행정부의 ‘차명·우회입법’도 경쟁이 치열하다는 하소연이다.

때문에 국회 안팎에서는 법안 발의 건수 등 양적인 측면에서 의원들의 의정평가를 하기보다는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가결율 등 ‘질적 측면’을 중요하게 따지는 분위기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18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모두 1336건의 의원 발의가 있었다. 16개 상임위 가운데 가장 많았지만, 이 가운데 원안 그대로 통과된 것은 불과 11건, 수정 가결된 것도 25건에 불과했다. 그나마 대안으로 반영돼 폐기된 것은 425건이었지만, 본회의 표결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폐기된 법안이 무려 862건에 달했다. 홍완식 교수는 “시민단체의 초기 의정평가가 양적 측면만을 평가한다는 지적이 있자 가결율로 보완하거나 법률 제정안, 법률 전부 개정안, 법률 일부 개정안 등으로 구분해 배점을 하는 방식으로 보완을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표절법안이나 부실법안 등에 대한 감정제도를 도입하는 방법으로 불필요한 법안 발의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종합] 보스턴 폭탄 테러 사건, 용의자 전원 체포로 종료
MB, ‘황제테니스’도 모자라 ‘반값테니스’?
누리꾼, “국정원 은폐 폭로 권은희 지켜라”
“안철수가 인물은 인물인데 정치적 입장은…”
“오빤 침대 위의 마징가제트야”
홍준표 지사, 휴일 관용차로 동창회 가다가 사고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1.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2.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3.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4.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5.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