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당 기자회견문엔 떠나야 하는 이유만 가득
진보정의당에 대한 애정어린 격려 찾을 수 없어
내년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세력’과 손 잡을까
진보정의당에 대한 애정어린 격려 찾을 수 없어
내년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세력’과 손 잡을까
보통 신문들은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의 연설내용을 기사화하는데 인색하다. 지면이 한정된 탓에 소수정당의 목소리까지 담아내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신문들은 지난 11일 심상정 진보정의당 원내대표의 연설 관련 기사를 크게 다뤘다. 2면에 기사를 배치해, 주목도를 높인 신문도 있었다. 그가 “진보정치는 국민의 기대만큼 준비되지 못했다. 과거의 낡은 사고틀에 갇혀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했다. 진보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진보정치 혁신에 실패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진보정치에 대한 성찰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6월16일 당대회를 통해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혁신의지도 내비쳤다.
그의 성찰과 각오를 들으며, 문득 한 의원이 스쳐갔다. 5월3일 진보정의당을 탈당한 강동원 의원이다. 강 의원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간판으로 출마해, 4선을 넘보던 이강래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민주당 텃밭이라는 호남에서, 새로운 인물과 정치개혁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열망을 타고 진보정당에 소중한 원내 의석을 보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통합진보당 폭력사태를 겪으며 진보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겼고, 진보정당의 입지가 위축되자 결국 탈당을 택했다. 특히 강 의원이 독자세력화를 시도하는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창당할 경우, 여기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면서 그의 탈당여부에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그가 탈당을 선언할 것으로 점쳐진 5월3일, 진보정의당 당직자는 “당에 주는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강 의원이 탈당 보도자료만 내고 기자회견을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이 당직자가 그렇게 말한 직후, 강 의원은 국회 정론관 마이크 앞에 섰다. 그는 “저는 오늘 그동안 몸 담았던 진보정의당을 떠납니다”라며 탈당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당을 떠난다면 착잡한 심경일 텐데, 기자회견문 첫머리에 “국감스타 의원으로 대한민국 의정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는 자찬이 들어간 대목이 눈에 띄었다.
그는 왜 당을 떠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지역구 남원·순창지역에 진보정의당 당원이 존재하지 않으며, 친분이 두터운 분들조차도 입당권유를 외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런 현실에선 2014년 지방선거에 단체장, 지방의원 후보를 단 한 사람도 내세울 수 없다”는 고충도 밝혔다. “당을 탈당하라”는 지역민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고뇌와 진정성에 대해 당원 여러분의 각별한 이해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국회의원이 정치환경의 변화를 고려해 탈당 등 정치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 역시 진보정당을 외면하는 지역 현실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별에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손을 힘겹게 놓아주는 상대의 상처가 덜한 법이다. 강 의원의 탈당 기자회견문엔 자신이 떠나야 하는 이유가 가득할 뿐, 노회찬 공동대표가 의원직을 잃는 등 당세가 위축된 당에 대한 애정어린 격려를 찾을 수 없었다. 더욱이 그는 진보정의당 원내대표까지 지낸 의원이다. 탈당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을 거듭했겠지만, 탈당 기자회견문에 담긴 그의 모습은 ‘난 떠날 수밖에 없어. 날 놓아줘’라며 등을 돌리고 떠나는 ‘매정한 님’처럼 비치기까지 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정론관에서 나온 그는 기자들에게 “탈당 결심은 지난해 12월에 했지만, (나의 탈당이) 올해 4월에 치른 재보궐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 탈당을 미뤄왔다”고 했다. 탈당을 연기한 것이 당에 대한 예우였다고 말하고 싶은 듯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난 통합진보당을 만들 때, 대중적 진보정당을 지향한다는데 동의해서 참여한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했다. 진보정당이 더이상 대중적 진보정당이 되지 못한 상황에서, 당에 남기 어렵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는 2011년 말, 유시민 당시 국민참여당 대표가 진보정당과 통합을 합의했을 때, 같이 합류한 정치인이다.
기자들의 질문들이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이런 질문이 나왔다.
“대중적 진보정당을 지향한다면, 그런 정당을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 당이 어려울 때 나간다는 시선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
기자는 이 질문에 대한 강 의원의 답변에 잠시 몸담았던 진보정당에 대한 그의 태도가 함축돼 있다고 본다. 당시 기자는 그의 답변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원내대표 등을 하며) 1년여간 노력하지 않았느냐.”
이 말은 진보적 가치와 진보정당의 확장을 위해 지역에서, 제도권 정치영역에서 오랫동안 열정을 바쳐온 사람들이, 또 6월16일 혁신당대회에서 ‘7가지 대국민 약속’ 등을 채택하며 새 출발의 의지를 다진 심상정 의원 등 진보 정치인들이 들으면 서운할 법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정치권 안팎에선 강 의원이 과연 내년 지방선거 등에서 ‘안철수 세력’과 손을 잡을지를 지켜보고 있다. 진보정당에서 ‘1여년간 노력해봤다’는 그가 만약 안철수 의원과 정치적 연대를 하게된다면, 그런 그를 잡은 안 의원이 어떤 명분을 내놓을지 등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 될 것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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