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초등교과서 “독도는 일본땅” 파문
일, 미-중 양강구도에 불만 커지자
과거사·영토문제로 불안감 드러내
한-일 정상회담 갈수록 멀어져
오바마, 한·일순방때 중재 나서도
양국 화해시도 가능성 높지 않아
일, 미-중 양강구도에 불만 커지자
과거사·영토문제로 불안감 드러내
한-일 정상회담 갈수록 멀어져
오바마, 한·일순방때 중재 나서도
양국 화해시도 가능성 높지 않아
일본 정부가 4일 발표한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와 외교청서는, 가뜩이나 안갯속에 싸인 한-일 관계 앞에 걸림돌을 하나 더 갖다 놓은 것과 같다. 양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넘도록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정상회담도 더 멀어진 듯 보인다. 두 나라의 내부 사정과 동북아 역학 구도 등이 만들어낸 구조적인 갈등 탓에 냉랭한 한-일 관계는 당분간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 일본의 불만과 불안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은 1차적으로 지난해 야스쿠니신사 전격 참배 등으로 갈등을 키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이런 우경화 행보의 배경에는 2012년 12월 총선에서 아베 정부를 재출범시켜준 일본 사회의 정서와 여론이 자리잡고 있다. 2차대전 패전국이 아니라 ‘전후체제를 탈피한 강한 일본’을 바라는 여론에다,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불만이 아베 정부를 재탄생시킨 만큼, 일본의 우경화 흐름은 아베 정권 내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중국이 미국과 양대 강국(G2) 구도를 형성하며 급격하게 부상하면서, 일본은 역내 주도권을 뺏겼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중-일 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도 영토에 대한 일본의 민감성을 키웠다. 박근혜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 대해 일본 쪽도 분위기가 험하다고 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일본학)는 “일본은 현재, 한국과 중국이 연대해 과거사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것보다도,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망신을 준다는 데 대해 더욱 반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한국의 상처와 자존심 일본의 보수 우경화 행보를 비판하며 한-일 정상회담 등 일본의 요청을 외면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도 쉽게 태도를 바꾸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 정부의 도발에 크게 상처받은 국내 여론 때문에 박 대통령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줄곧 ‘과거사 문제 등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조처’를 요구해왔지만, 취임 1년이 넘도록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다. ‘고노 담화를 수정할 뜻이 없다’며 잠시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던 일본 정부는 지난달 한-미-일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태도를 바꿨다. 위안부 문제를 논의할 양국 국장급 회의도 예고와 달리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정부로서는 곤혹스런 부분이다.
더욱이 이달 말 야스쿠니신사 춘계예대제에 아베 내각 장관이라도 참석하게 되면 여론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평화헌법 수정이나 집단자위권 확보 움직임이 이어질 수 있어, 박 대통령으로서도 섣불리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설 수도 없다. 박 대통령의 평소 말처럼 “이러려면 뭐하러 정상회담을 했느냐”는 비판이 되돌아올 게 뻔하다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 한-미-일 3자 구도 미래는? 한국과 일본의 내부 사정과 별개로 한-미-일 3각 공조의 회복을 바라는 미국의 중재는 여전히 한-일 관계의 변수로 남아 있다. 미국은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을 동북아 전략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로 여기고 있고, 지난달 네덜란드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달 말 예정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국·일본 방문 때, 미국은 미사일방어체제(MD)와 정보협정 등 더 강력한 3국 공조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안보의 기본 축으로 삼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중재를 마냥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는 지난달 3자회담 때처럼 ‘과거사·영토 문제’와 ‘북핵 등 동북아 안보문제’를 분리해 대응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없을 때까지는 관계회복을 시도하지 않고, 미국과 연계한 안보협력은 별개로 보겠다는 것이다. 반면 역사문제 등에 대해서는 중국과 공조를 유지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하얼빈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시안의 광복군 주둔지 기념 표지석, 우리 정부에 중국 인민군 유해 반환 등이 그런 사례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며, 동시에 세계 양강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외교 전략이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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