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주현 정치부 기자
2012년 대선이 문재인의 패배로 끝나자,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던 페이스북이 격전장으로 변했다. 문재인을 화끈하게 돕지 않은 안철수에 대한 원망과 그에 대한 반박으로 뒤덮였다. 나는 안철수가 흔쾌히 문재인을 도왔다면 결과가 달랐을 거라는 쪽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안철수 캠프에서 활동했던 지인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안철수는 처음부터 없어야 했는지. 나도 치료 대상인가 보다. 하긴 없어야 했을 배신자에게 목숨 걸고 다 던지고 일했으니. 사람이 너무 밉다.”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그에게 상처를 준 것이 미안했다. 생각해 보았다. 안철수는 과연 한국의 선거 역사에서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나는 그때 안철수를 ‘역사의 번개탄’이라고 이름 붙였다. 번개탄은 짧은 시간에 땔감에게 연소할 기회를 준 뒤 스러진다. 안철수도 마치 번개탄처럼, 새누리당에 이길 여지가 없어 보였던 구도에 불을 붙인 뒤 정치 일선에서 사라졌다.
보름 전부터, ‘역사의 번개탄’이라고 명명했던 안철수가 대표가 된 새정치민주연합을 취재하게 됐다. 안철수는 자신이 내세운 ‘새정치’의 내용이 무엇인지 미처 입증하지 못한 상황에서, 스스로 ‘헌정치’라고 몰아세웠던 민주당과 합쳤다. 원내 126석을 지닌 거대 야당은 당 이름을 지으면서 2석짜리 ‘새정치’ 뒤에 ‘민주’를 놓는 무력한 양보를 했다. 민주당은 새정치민주‘당’을 원했다는데 이마저도 실패했다. ‘연합’이란 당명에선, 방세를 낼 돈이 없는 남녀가 급한 마음에 결혼 아닌 동거를 택했다는 느낌이 든다. 여전히 새정치와 헌정치의 거리는 멀어 보였다.
며칠 전, 새정치의 첫 과제였던 ‘기초공천 폐지’가 결국 폐기됐다. 안철수는 새정치와 헌정치의 물리적 갈등 속에서 여론조사로 이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결정했고, 대다수 언론은 이를 ‘출구전략’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그의 진심은 출구전략이 아닌 ‘정면돌파’였다. 그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약속을 지키라며 언급했던 ‘미생’은 단지 레토릭이 아니었다. 자신도 새정치의 약속을 지키는 미생이고 싶었다. 다만, 그는 자신이 미생처럼 익사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앞서 당이 비공개로 실시한 설문조사는 자신이 주장한 ‘기초 무공천’이 다수 의견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강폭, 수심, 물살의 세기 등을 미리 계산해본 뒤 자신의 수영 실력으로 헤쳐갈 수 있다고 자신했던 듯하다. 이 때문에 실제 자신의 뜻과 다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그는 6시간30분 동안 사무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날, 그는 참모들로부터 두 가지 연설문을 받았다고 한다. ‘무공천 응답이 우세할 경우’와 ‘공천 의견이 우세할 경우’에 따라 달리 작성된 회견문이었다. 미리 두 가지 상황에 대비했음에도 카메라 앞에 서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사무실에 머무는 동안 연설문을 뜯어고쳤다고 한다. 그의 손을 거쳐 초안과 많이 달라진 연설문엔 “추악한 매관매직”, “줄을 세우는 중앙정치의 전횡”, “풀뿌리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 등 공천의 폐해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담겨 있었다. 여론에 승복은 하지만 헌정치에 대한 불신은 여전했던 셈이다.
왜 기초공천 폐지가 새정치의 으뜸 과제인지, 또 기존 정치는 단지 헌정치에 불과한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제 그는 불씨만 틔우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야권을 꾸준히 타오르게 하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는 번개탄에 그치지 않고 장작불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새정치든 헌정치든 동원할 수 있는 땔감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6·4 지방선거는 이에 대해 결정적인 답을 내려줄 것이다.
이유주현 정치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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