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후보로 18년 만에 호남 입성…‘지역 구도’ 흔들
밑바닥 표심 겨냥 공약으로 ‘박근혜 정부 심판론’ 돌파해
이 당선자 “주민들 정치 바뀌는 위대한 첫걸음 내딛였다”
밑바닥 표심 겨냥 공약으로 ‘박근혜 정부 심판론’ 돌파해
이 당선자 “주민들 정치 바뀌는 위대한 첫걸음 내딛였다”
7·30 재보궐선거의 주인공은 단연 이정현 새누리당 당선자다.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홍보수석과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정무비서관 출신이 맞서 ‘왕의 남자들’의 대결로 불렸던 전남 순천·곡성 재보선에서 이 당선자는 49.43%를 득표해 40.32% 득표에 그친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예상을 뒤엎고 크게 이겼다. 소선거구제로 국회의원을 뽑기 시작한 1988년(13대 국회) 이후 광주·전남에서 새누리당 쪽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호남 전체로는 1992년 양창식 전 의원(전북 남원), 1996년 강현욱 전 의원(전북 군산)에 이어 세번째로 18년 만이다. 이 당선자는 “순천시민과 곡성군민이 정치를 바꾸는 위대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을 감격스럽게 생각한다. 유권자들이 이 어려운 선택을 한 만큼 결실을 맺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와 인사 파동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집권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박근혜의 복심’으로 불리는 그가 순천·곡성에 도전장을 냈을 때 ‘박근혜 심판론’은 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예산폭탄론’으로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었다.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정권 실세’라는 점을 활용해 △순천대에 의대 유치 △정원박람회장의 국가공원화 △일자리 창출 등 밑바닥 표심을 겨냥한 공약을 내세운 것이다. 이 당선자는 유권자들에게 잔여임기 1년8개월만 자신을 써보고 마음에 안 들면 버리라며 선거운동에서도 전략전을 펼쳤다.
서갑원 후보의 공천에 반발해 구희승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등 새정치연합의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도 이 당선자의 승리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순천·곡성은 18·19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후보가 잇따라 당선되고, 지방선거에서도 무소속 시장이 재선하는 등 제1야당의 조직력이 약화된 독특한 정치지형으로, 이 당선자가 파고들 ‘틈새’가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새정치연합 후보가 될 것”, “이정현 후보가 아슬아슬하게 질 것”이라는 등 이 후보의 승리를 예상하는 쪽은 많지 않았다. 호남의 전략적 투표 성향에다 이 후보의 고향인 곡성의 인구가 순천의 8분의 1 정도밖에 안 돼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심지어 새누리당에서조차 여론조사 결과 계속 이 후보가 앞선 걸로 나왔지만, “여론조사가 잘못됐을 것”이라며 전체 판세 집계에서 지는 것으로 분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뚜껑을 열자, 이 당선자는 곡성뿐 아니라 서 후보의 고향인 순천에서도 승리했다. 순천에서 이 후보의 득표율은 46.22%로 42.92%에 그친 서 후보를 3%포인트가량 앞섰다. 곡성에선 투표율 61.1%, 득표율 70.55%로 똘똘 뭉쳤다.
이 당선자의 호남 지역구 입성은 새누리당에도 새정치연합에도 ‘1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새누리당은 “80년 광주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큰 디딤돌을 놓았다면, 2014년 호남 민심은 선거혁명을 통한 지역구도 타파, 진정한 민주정치의 큰 발자취를 내디뎠다”(민현주 대변인)고 자평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영남 기반 정당’인 새누리당에조차 패배해 지역 기반이 흔들리는 위기에 처하게 됐다.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이 당선자는 1985년 구용상 전 민주정의당 의원의 비서로 정치권에 입문했고, 민정당 당직자로 특채된 뒤 전략기획실, 정세분석실, 대변인실 등을 거치며 잔뼈가 굵었다. 1995년 광주시의원 선거, 2004년 국회의원 선거(광주 서)에 출마했으나 패배했다. 2004년 총선 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낙선자들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이 당선자는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달라”고 열변을 토했다. 사흘 뒤 당 수석부대변인으로 전격 기용된 때부터 10년 동안 이 당선자는 한번도 박 대통령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2008년 총선 때 비례대표 22번을 받아 ‘당선 막차’를 타고 처음 금배지를 달았고, 박근혜 정부 출범 뒤부터 지난 6월 초까지 청와대 정무수석, 홍보수석을 지냈다.
조혜정 기자, 광주/안관옥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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