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의 메인 화면.
카카오톡, 어떻게 정치를 변화시키고 있나
몇년 전,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성화되며 정치부 기자들에겐 일이 하나 늘었다. 국회의원들의 트위터·페이스북 계정에 어떤 글이 올라오나 수시로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해당 의원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내가 트위터에도 이미 올렸지만….”이란 말을 심심치 않게 듣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일이 하나 더 늘었다.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이다. 정당마다 의원들 단체 카톡방, 상임위원회 단체 카톡방, 여성의원들 단체 카톡방 등등 의원들마다 카톡방 만들기가 열풍이다. 보좌진까지 카카오톡 등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 특히 한 정당 소속 의원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은 그 정당의 당내 여론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될 때도 있다.
매체 자체가 소통과 내용에 영향을 끼친다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오랜 명제는 2014년 여의도 국회에도 적용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입에 올리던 여의도 사람들은 최근에는 “의원 카톡방이 난리다”, “의원 카톡방에 누가 글을 올렸던데….”라는 말을 하고 있다. 카카오톡이라는 ‘매체’가 이들의 ‘정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국회님’이 ‘정치님’을 초대했습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과 통합진보당 등 각 정당은 의원들 대부분이 가입된 카카오톡 단체방이나 마이피플 단체방을 가지고 있다. 특히 130명의 의원이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카톡방이 뜨거운 것으로 알려졌다. 흔히 말하는 ‘계파’가 새누리당보다 많고, 당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특성이 카톡방에도 그대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메신저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의원들은 보통 의원 전체 단체방, 상임위원회 위원 단체방, 의원실 보좌진 단체방 등 여러 개의 카톡방에 가입돼 있다. 또 새정치연합의 ‘을지로위원회’ 처럼 같은 일을 하는 의원들끼리의 단체방, 친소관계에 따른 단체방, 여성의원들끼리의 단체방등 추가로 가입된 카톡방도 부지기수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가끔 헷갈릴 때가 있어 조심해야 한다. 몇 시간만 지나면 수백개씩 대화가 올라오니 확인하는 것도 일이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방(의원실) 업무의 80%는 카톡으로 한다. 없으면 안된다”고 웃었다. 스마트폰에 익숙지 않은 의원들은 늦은 밤에도 뜨는 대화 알림 때문에 당황해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의원 수가 적은 정의당과 통합진보당의 경우 의원 전원이 가입돼 있지만 새누리당의 경우 모든 의원이 참여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8명의 의원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여기까지는 ‘일반인’들의 ‘카톡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통과 냉소 사이 어딘가
지난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운동이 한참 진행중이던 5월 어느날 새정치연합의 카톡 단체방에 한 의원이 글을 올렸다. “여기가 선거대책본부 같다.” 당시 공동선대위원장들과 의원들의 선거 유세 일정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의원이 ‘당의 전략 부재’를 냉소적으로 지적한 내용이었다. 실제로 지방선거 당시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카톡 단체방을 통해 선거 지원 일정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원이 “내일 ○○지역 갑니다 가실 분?”이란 내용을 통해 지원유세에 동참할 의원들을 모았다고 한다.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여야 대치 정국이 풀리지 않고 있는 지금도 카톡방은 의원들에게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광화문의 세월호 유가족 동조 릴레이 단식도 카톡 단체방을 통해 일정을 잡고 있다고 한다.
새정치연합 카톡방의 경우 당내 현안에 대한 의원 각각의 의견이나 주장도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7·30재보선 당신 공천 갈등, 세월호 특별법 두차례 협상 불발 등 ‘바람 잘 날 없는’ 야당의 카톡방은 그때그때 이슈마다 의원들 생각이 쉴새없이 뜨고 있다. 최근에는 세월호 특별법 처리에 대한 의견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카카오톡 소통’이 당내 여론을 왜곡한다는 불편한 시선도 존재한다. 온건파로 불리는 한 의원은 “카카오톡에 글을 올리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거기에 글을 올리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고 불편한 심기를 비쳤다. 다른 의원도 “강경파 의원들만 목소리만 주로 올라오는데 이게 의원들 생각 전부가 아니다. 나는 그냥 대화 내용을 보기만 한다”고 말했다. 최근 “당의 장외투쟁을 반대한다”고 서명한 의원들을 대해 한 당직자는 “의원 단체방의 ‘눈팅파’(참여하지 않고 보기만 하는 의원)로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의원 단체방이 소통 대신 당내 불신과 냉소를 심화시킨다는 이야기다. 또 ‘끼리끼리’ 문화를 더 심화시킨다는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반론도 만만찮다. 한 초선의원은 “카톡방은 의원총회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당의 주요 사안을 정하는 것은 엄연히 의원총회고, 카톡방은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아고라’라는 것이다. 그는 “의원총회를 자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카톡방을 통해 의견을 나눈것은 일상적인 소통이고 정보를 나누는 장일 뿐이다. 당의 진로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카톡방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새정치연합만 놓고 보면 카톡방은 ‘소통’과 ‘냉소’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
들어가야 하나, 나가야 하나, 있어야 하나
직장인들에게는 카톡 단체방이 여러개가 존재한다. 이름을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 단체방 이름을 ‘과장 없는 회사방’, ‘부장 없는 ○○팀방’ 따위로 정해 놓곤 한다. 직장 상사와 업무를 소통하는 카톡방 외에도 동기나, 평직원들끼리 소통하는 카톡방을 만드는 것이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는 의원 전체 카톡방에 가입하지 않아 왔는데, 김한길 전 대표의 경우 의원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 전 대표의 경우 평소 보안 기능이 강하다는 이유로 미국판 카톡인 ‘바이버’만 사용해 카톡앱을 휴대전화에 깔지 않았다. 안 전 대표는 측근들과 ‘바이버’로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김 전 대표는 7월초 7·30 재보궐 선거 동작을 전략공천 파동 당시 박수현 비서실장을 통해 “7·30 선거를 정말 무거운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승리를 위한! 그리고 원칙있는 공천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의원 카톡단체방에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최근에 다른 의원을 통해 단체 카톡방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 역시 최근 카카오톡을 휴대전화에 설치했지만 의원 전체방에 아직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둘러싸고 당내 반발에 직면한 박영선 원내대표는 현재 의원 전체 카톡방에 참여하고 있다.
‘카카오톡이냐 카카오 ‘독’이냐
카카오톡의 속도에 유언비어나 마타도어도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있어 눈쌀을 지푸리기도 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야 논의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가 아닌 내용들이 담긴 문서가 카카오톡으로 돌아 유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했다. 또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특위 위원장인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세월호 특별법과 유가족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유가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조정식 새정치연합 사무총장은 “새누리당은 세월호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카카오톡을 카카오‘독’으로 썼다”고 꼬집기도 했다. 새누리당 한 의원도 “카카오톡에 이상한 내용들이 돌아다니며 난리다.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급기야 새정치연합은 카카오톡 등을 통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왜곡된 사실이나, 유가족들을 비난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의 글들이 유통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로 ‘유언비어와 악성 댓글 제보센터’를 최근 당에 설치하기도 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국회 본회의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국회 본회의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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