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사과한 뒤 기자들에게 다가가 “여러분께도 걱정을 많이 끼쳐서 정말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나선 것은 불가피한 수순이었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평가다. 이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최근 검찰 수사에서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해 ‘대통령이 지시했고 진행 과정을 대통령께 보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진정성을 갖고 검찰 수사를 받아들여 혼돈에 빠진 정국을 수습하고, 각종 의혹의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야권은 박 대통령 발언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더불어민주당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민조사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석현 의원은 “기업들이 선의로 도와준 것이라고 한 것은 검찰 수사에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업들이 재단법인 미르·케이(K)스포츠에 출연한 800억원의 돈에 “대가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뇌물죄’를 피해가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전해철 의원도 “이미 최순실씨는 10여가지 죄명에 해당하는데 검찰이 직권남용·사기미수 등의 혐의만 적용했다. 특히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으면 절대적으로 미진한 수사다”라며 검찰이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수사를 받더라도 ‘서면조사’에 그쳐선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석현 의원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공동정범이기에 박 대통령을 처벌할 순 없다 해도 최씨를 처벌하려면 박 대통령 수사가 불가피하다”며 “최소한 (청와대) 방문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1998년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성추문에 휘말려 수사를 받게 됐을 때 백악관에서 특별검사의 수사에 응한 사례를 언급하며, “당시 특검이 백악관에 가서 클린턴 부부에게 선서를 시키고 심문을 했다. 대통령이 직접 조사받는 걸 국민이 알 수 있도록 박 대통령에게 선서시키는 장면을 언론에 공개하고 심문에 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특검 수사도 받겠다고 밝혔지만 특검의 방식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동안 야당은 반드시 별도 특별법을 만들어 특검을 여야 협상으로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새누리당은 정부 인사가 다수인 특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권을 갖는 ‘상설 특검’을 주장해왔다. 이 때문에 특검 도입을 위한 여야 협상은 제대로 시작도 못한 채 결렬된 상태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날 “비리의 몸체인 대통령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는 특검이어야 하고 그러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법’에 의해 야당이 추천하는 특검이어야 한다”며 “이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담화 발표 뒤 새누리당도 입장을 바꿔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일 뜻이 있다고 밝히면서 특검법 재협상의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우리 당으로선 정치적 중립성이 담보된다면 야당이 요구하는 (특별법에 의한) 특검, 야당이 추천하는 특검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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