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새누리당 비박근혜계 ‘좌장’으로 불리는 김무성 전 대표가 “정치인생의 마지막 꿈”이라는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탈락 뒤 선언했던 ‘백의종군’보다 한층 무거운 ‘승부수’다. 6선의 경륜과 비박계라는 일정 세력을 보유한 김 전 대표의 행보는 그 자신은 물론 정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됐다.
김 전 대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대선 불출마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의 측근인 강석호 의원은 23일 “김 전 대표가 얼마 전부터 ‘내가 선대본부장을 맡아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어놓고 무슨 낯짝으로 대선에 출마하겠냐’고 말해왔다”고 전했다. 친박근혜계 누구도 이번 사태에 책임지지 않는 터에, ‘원조 친박’이었던 김 전 대표가 먼저 자신을 던진 것이다.
김 전 대표는 ‘보수 재탄생’과 ‘대통령 탄핵’, ‘개헌’에 주력할 뜻을 밝혔다. 우선, 그가 회견문에서 “보수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겠다”고 밝힌 것은 “최순실 사태를 불러오고 방조한 친박계를 청산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측근들이 전했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의원이 물꼬를 튼 탈당 대열에 당장 합류하지 않고, 새누리당에 남아 당을 완전히 탈바꿈시키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비박계 안에서는 “핵심 친박 10명은 출당시켜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김 전 대표는 친박계를 청산할 핵심 지렛대로 박 대통령 탄핵에 앞장선다는 계획이다. 비박계에서 가장 많은 의원을 움직일 수 있는 김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면서, 현재 30명가량으로 관측되는 여당 내 탄핵 찬성파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김 전 대표가 탄핵 추진 연판장을 돌리면 당이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고 친박과 결별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의 과정·결과에 따라 친박계가 소멸하거나, 김 전 대표 등 비박계가 집단 탈당을 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김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여권의 대선 구도도 크게 꿈틀댈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에 남은 대선 주자는 유승민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정도다. 김 전 대표가 친박 청산을 통해 새누리당 재창당에 성공할 경우, 유승민 의원과 손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향후 유 의원은 김 전 대표의 지원이 절실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이날 ”김 전 대표의 말(대선 불출마 선언)을 듣고 숙연하게 생각한다. 당에 남아서 당 개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을 평가한다”며 호의적 태도를 보였다.
김 전 대표가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는 개헌론자라는 점도 주목된다. 그는 이날 “7명째 대통령 하에서 이런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최순실 사태를 끝으로 국민에게 괴로움을 끼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개헌도 동시에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개헌파’가 여야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터라, 개헌을 고리로 그의 존재감이 높아질 수 있다. 향후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로 개헌이 이뤄질 경우, 김 전 대표가 실권을 쥔 총리를 맡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전 대표가 이날 회견에서 인용한 게송(백척간두진일보 시방세계현전신·百尺竿頭進一步 十方世界現全身)대로, ‘절벽 끝에 서서 한 걸음 내디디면 새 세계가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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