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들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것을 지켜본 뒤 나서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엄마가 이겼다!” “국회의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위대한 촛불 국민 만세!” “새누리당 해체하라!”
9일 오후 4시10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이 선포되는 순간, 국회 본회의장 2층 방청석에서는 박수 소리와 함께 “만세”가 터져나왔다. 노란 점퍼를 맞춰 입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의 제안으로 본회의를 직접 참관한 세월호 유가족 40여명은 70분가량 이어진 표결 과정 내내 숨죽인 채 1층 회의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 가결이 선포된 뒤에야 마침내 울음을 터트렸다.
이날 오후 3시 시작된 본회의의 분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2004년 3월12일과는 사뭇 달랐다. 탄핵에 반대하는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을 포함해 여야 의원들 모두 묵묵히 차분하게 회의에 임했다. 여야 의원들이 한데 뒤엉켜 몸싸움을 벌였던 12년 전과 달리, 이번엔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의장석 점거가 금지된데다 탄핵을 지지하는 의견이 국민의 절대다수여서다. 민주당 지도부는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가결돼도 환호성을 지르거나 박수를 치지 말라”며 표정 관리를 주문하기도 했다. 표결에 앞서 김관영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가 20분가량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을 하는 동안에도 1층의 의원석과 2층의 방청석에선 침묵을 지켰다.
속전속결이었다. 무기명 비밀투표로 이뤄진 탄핵안 표결은 당론투표가 아닌 자율투표 방식으로 이뤄졌다. 오후 3시23분께 투표가 시작되자 야당에선 지도부인 추미애(민주당)·박지원(국민의당)·심상정(정의당) 의원이 제일 먼저 기표소로 향했다.
여당에선 탄핵안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김진태 의원이 가장 먼저 투표에 나섰다. 비박계 좌장인 김무성 전 대표도 투표가 시작되자 곧바로 의석에서 일어나 투표에 참여했다. 비박계 의원들의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 대변인 격으로 활동해온 황영철 의원은 느지막이 투표에 참여한 뒤 퇴장하며 역시 비박계인 주호영 의원과 미소를 띤 채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유승민 의원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침묵을 지키다 투표가 끝나갈 때쯤 표를 던졌다.
새누리당 지도부인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도 시종 침통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지켜보다 막판에 투표에 합류했다. 이 대표가 투표소에서 나오자 방청석에선 “약속을 지켜라”라는 조롱이 나오기도 했다. 이 대표가 앞서 “야당이 탄핵을 실천하면 내가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고 말한 것을 비꼰 것이다. 서청원·조원진·이장우·유기준 의원 등 다른 친박계 의원들도 대부분 표를 던졌다. 전체 의원 300명 가운데 299명이 투표에 임했지만, 친박계 가운데 유일하게 최경환 의원은 본회의장을 찾았다가 이내 퇴장해 표결에 불참했다.
이어 3시54분, 30분 만에 투표가 끝나자 여야 8명의 감표위원들이 개표를 지켜봤다. 개표 과정에선 긴장이 가득했던 회의장의 정적을 깨는 고성이 나오기도 했다. 감표를 맡은 일부 야당 의원들이 지도부를 향해 ‘오케이’ 신호를 보내며 ‘가결’을 암시하자, 여당 의석 쪽에선 “왜 자꾸 감표위원들이 신호를 주느냐”는 항의가 나왔다.
탄핵 찬성 234표. 압도적 표결 결과를 두고 정세균 국회의장은 “오늘 우리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탄핵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이 자리에 계신 여야 의원님을 비롯하여 국민 여러분들 마음 또한 한없이 무겁고 참담하실 것”이라며 “더 이상 헌정사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 의장은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국회도 국정의 한 축으로서 나라가 안정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당부했고, 정부 공직자들을 향해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민생을 돌보는 일에 전력을 다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방청석에서 환호성이 터지는 가운데서도 야권은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는 입을 굳게 다물었고,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말없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을 뿐이다. 4시12분 산회 선포와 함께 본회의장을 박차고 나온 이정현 대표는 차량에 탑승할 때까지 기자들의 질문에 한마디도 응답하지 않았다.
정 의장은 이날 오후 4시15분께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에서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등 국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소추 의결서에 서명했다. 법사위원장인 권성동(새누리당) 의원은 오신환(새누리당)·이춘석(민주당)·김관영(국민의당) 의원과 함께 4시53분 국회를 출발해 탄핵의결서를 헌법재판소에 5시56분께 전달했다.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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