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대표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이 비대위 구성 등 추진”
‘골수 친박’으로 꼽히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결국 16일 사퇴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책임을 지고 21일 사퇴하겠다던 약속을 닷새 앞당긴 것인데, 이날 친박계 정우택 원내대표의 선출로 ‘폐족’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안전판이 마련되자 비로소 물러난 것이라는 게 당 안팎의 해석이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오늘 당 대표직을 사퇴한다. 조원진·이장우·최연혜·유창수·박완수 최고위원도 함께 사퇴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어 친박계의 신임 정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권한을 가진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이 대표와 함께 간담회에 나선 조원진·이장우·최연혜 최고위원 모두 밝은 표정이었다. 이들은 그동안 똘똘 뭉쳐 비박계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어왔으나 이날은 “국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다”, “백의종군하겠다”며 한껏 몸을 낮췄다. 만약 비박계 나경원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됐다면 이날 당 지도부 사퇴는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경우 친박 지도부는 약속한 21일까지 자리를 지키며 이 대표를 앞세워 비대위 구성 작업을 마무리하고 새 비대위원장에게 당권을 넘겨 비박계의 당 장악을 최대한 방어한다는 전략을 짰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9일 전당대회에서 20대 총선 참패로 궁지에 몰린 친박계의 지원을 등에 업고 당선된 이 대표는 지난 4개월여의 임기 동안 당의 지지율이 반토막 나는 상황에서도 오로지 ‘박근혜 경호’에만 치중했다는 불명예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 대표 수락 연설 때 “친박과 비박은 없다”고 선언한 그의 말과 달리 새누리당 친박계는 노골적 패권주의로 일관해왔다. 새누리당이 ‘청와대 2중대’, ‘청와대 출장소’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 역시 현실이 됐다. 이 대표는 초유의 ‘국정감사 거부’와 ‘명분없는 단식’ 등으로 새누리당의 추락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이 대표의 사퇴 선언 역시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계파의 이해관계에 치중했다는 점만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9일 저녁 때만 해도 “당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면 바로 그만두겠다”며 비박계 쪽의 즉각 사퇴 요구를 거부했었다. 하지만 친박 원내대표의 탄생 직후 지도부 사퇴를 전격 발표함으로써, 이 대표가 말해온 ‘당의 공백을 메울 장치’란 친박계의 주도권이었음이 드러났다. 이 대표는 이날 정 원내대표의 선출에 대해 “새누리당이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고,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도록 뜻을 모았다”는, 민심과 동떨어진 평가를 내놓았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언니가 보고 있다 44회_새누리 비주류의 입, 황영철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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