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인 지난 1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경찰 차벽을 사이에 두고 위쪽에서는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 탄핵 촉구 촛불집회가, 아래쪽에서는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가 주최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황준범 정치데스크 jaybee@hani.co.kr
다음주, 늦어도 열흘 안에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최종선고를 내린다.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헌재 법정에서는 재판관의 상식적인 추궁에도 제대로 변론하지 못하면서 광장에 태극기를 두르고 나가 “복종하라면 복종해야 하냐. 우리가 노예냐”며 여론전에 열 올리는 박 대통령 대리인단 변호인들을 보며 ‘탄핵 인용’을 확신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문제는 탄핵 이후다. 헌재 결정으로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라는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나면 또 다른 불안과 혼돈을 마주해야 한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미-중 갈등과 한반도 긴장, 저성장·고실업·고령화 등 그동안 컨트롤타워도 없이 손놓아온 대내외 과제들을 이제는 자세 고치고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탄핵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선,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아스팔트 보수’의 반발이 지속될 것이다. 헌재 결정을 뒤집을 방법이 없어 지금보다 동력이 약해지고 거리에 나오는 사람 수가 줄어들 수는 있어도 대선 정국과 맞물려 목소리를 계속 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이번 탄핵 국면을 통해, 그동안 30% 안팎으로 뭉뚱그려 표현해온 ‘보수’가 내부적으로는 10%가량의 ‘극우’와 20% 정도의 ‘중도 보수’로 분리돼 있음을 봤다. 이번에 태극기를 흔들며 스스로 ‘존재’를 발견한 극우는 대선 정국은 물론, 이후에도 상수로 잠재하면서 언제든 들고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당장, 박 대통령 구속 수사 논쟁이 붙으면 이들이 반대의 최전선에 설 것이다.
보수 정치권도 덩달아 혼탁해질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보수’를 내걸고 뛰쳐나온 바른정당이 웰빙 기질을 못 버린 채 모호한 정체성으로 구심력을 잃어가는 반면, 당내 대선주자라는 이들이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극단의 언어로 선동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10%대의 지지율로 강한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자유한국당이 탄핵을 군더더기 없이 수용하고, 불복 세력의 분노를 미래 경쟁으로 흡수·대체해낼 수 있을까? 탄핵 국면에서 친박·티케이(TK) 당으로 스펙트럼을 더욱 좁힌 자유한국당에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탄핵 불복 정서에 편승해 대선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호위무사’로 자리매김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출마하면 이런 양상이 더 심해질 것이고, 홍준표 경남지사가 후보가 되어도 탈색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국은 근래 어느 때보다 훨씬 극우화되고 낯 두꺼워진 보수정당을 원내의 주요 일원으로 갖게 되는 셈이다.
야권은 그럼 무난하게 정권교체에 성공할 것인가? 대통령 탄핵으로 운동장은 야권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게 분명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이후에도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격한 대선 경쟁을 벌일 것이다. 최근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때 지난 ‘선 총리-후 탄핵’ 논쟁을 벌인 것은 사소한 전초전에 불과하다. 김종인 의원이 민주당을 뛰쳐나와 제3지대 후보로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반문재인’ 정서에 앞서 ‘어차피 정권교체는 이뤄질 것’이라는 판단을 전제로 한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성공하기 쉽지 않은 조건 또한 엄연하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상 사태에서 치러지는 대선이라, 패자들은 상대의 승리를 흔쾌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정권과 야당의 ‘허니문’도 없을 것이고, 새 정부 초반 인사 실패 같은 변수가 발생하면 곧장 내리막으로 향할 위험성도 크다. 이미 정치인들은 내년 6월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을 내다보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무엇보다, 누가 집권해도 여소야대인 다당 체제의 국회에서는 집권세력 마음대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 특검 연장법 무산에서 봤듯이, 민심과 4당이 원해도 어느 한 정당이 반대하면 못 한다. 지금 정치권의 ‘논쟁거리’인 협치·연정이, 두달 뒤에는 ‘필연’으로 다가올 것이다.
시민들은 춥고 긴 겨울을 촛불로 버텨내며 봄 앞까지 대한민국을 밀어왔다. 정치는 눈치보며 따라왔을 뿐이다. 이제 앞장서서 불안과 상처를 달래며 끌고 갈 자세와 능력을, 우리 정치는 갖추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