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국정원맨이 말하는 ‘국정원 개혁’
“독소조항 없애 사찰 우려 불식…
일정기간 이상의 징역형 추진”
“독소조항 없애 사찰 우려 불식…
일정기간 이상의 징역형 추진”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국정원 개혁,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개혁엔 반드시 저항이 따른다. 초조한 쪽이 진다. 1987년부터 국가안전기획부 개혁 이야기가 있었는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중요한 진전이 있더라도, 국민들이 보기엔 비슷하다. 왜 개혁이 실패했을까. 진단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외과와 내과 수술이 모두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국정원 개혁을 말할 때 개혁과 처벌을 구별하지 못한다. 만약 이번에 엔엘엘(NLL), 국정원 댓글사건 등을 조사한다고 치자. 불법이 확인된다 해도 처벌은 원장의 권한이 아니다. 불법이니 그건 사법기관의 역할이다. 서훈 국정원장을 포함해 지도부가 철저히 개혁과 처벌을 구별해야 한다. 특정 부서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이 조직이 축소돼 자리가 사라진 경우가 개혁이라면, 지난 정권 특정인 밑에서 불법적인 일을 한 경우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둘 다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면 전자가 인정하겠나. 구성원들이 개혁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더라도 범죄자와 동일한 처분은 인정하기 어려울 거다.
(국정원 개혁은 어떤 면에서 중요한가.)
=공식적으론 국정원의 역량 강화를 위해서 해야 한다. 나 개인으로선 국정원을 사랑하기에 개혁을 하는 거다. 그러니 반드시 성공시키고 싶다. 내가 생각할 때 국정원을 개혁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정원 구성원들의 애국심, 위계질서, 동료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의 애국심이 뛰어나지만 주관적이다. 위계질서가 튼튼하다면 국정원 직원이 원장을 제치고 청와대에 보고할 수 있었을까. 정보기관은 위계가 무너지면 망한다. 개혁이 성공하기 위한 1번 조건은 국정원 직원들의 반성이다.
(서훈 원장부터 1~3차장까지, 현재까진 국정원 출신 인사들로 지도부가 채워졌다. 국정원 출신이 국정원을 개혁할 수 있겠냐는 우려도 있다.)
=국정원 출신이 아니면 진짜 개혁을 할 수 없다. 국정원 출신이어야 개혁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국정원 출신이 아니면 어렵다. 개혁의 성공요소는 의지와 능력이다. 국정원 출신은 개혁할 능력은 있지만 의지가 없다. 외부에서 들어온 인사는 의지는 있어도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능력이 있는데 의지가 없어서 못하면 그 뒤엔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권력기관의 권한 축소는 조직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않나.)
=국정원이 비대해질 정도로 비대해져 줄일 수밖에 없으면 줄여야 한다. 그런데 국정원은 솔직히 인력 부족으로 하지 못하고 있는 업무가 너무 많다. 예를 들면, 평화시에 가장 중요한 건 경제다. 그런데 국정원엔 경제실이 없다. 지금 군 개혁도 굉장히 중요하잖나. 특히 중요한 게 방산이다. 국정원에 방산국이 있나, 방산단이 있나. 방산에 몇십조원을 쓰지 않나. 그런데 인력이 얼마나 되나. 마지막으로 평화시에 제일 중요한 건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방첩, 대테러도 모두 안전 기능이다. 국내업무를 크게 세 개만 말씀드렸다. 그것만 봐도 지금 인력을 소화하고도 더 뽑아야 할 거다. 국정원의 업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어디에 힘을 두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백화점식으로 해선 안된다.
물론 조직이 축소되는데 인력 감축이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팔이 썩는다면 아픈 부위는 도려내야 한다. 그걸 두려워 하면 안된다. 국정원이 살기 위해선, 역량이 강화되기 위해선 뭐든 해야 한다. (개혁이) 그렇게 두려웠다면 10년 전부터 “안됩니다” 했어야 한다. 국정원이 신뢰받지 못하게 된 이유가 어느 정도는 정권에 있다고 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부분은 직원들 개개인에게 책임이 있다.
(국내정보를 유지할 경우,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서훈 원장이 “해야 할 일, 하면 안될 일을 단순하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아주 디테일하게 규정하겠다”고 했다. 그걸 개정할 땐 본인들이 자의적으로 개정하는 게 아니고 국회나 정보판단위원회처럼 제3의 위원회에서 ‘승인’하도록 해야 한다. 제일 좋은 건 국회 정보위에서 하는 거다. 일단은 해선 안되는 업무를 규정하고, 해도 되는 업무는 계속 보충될 거다. 해선 안되는 업무는 너무나 명확한 거니까.
(테러방지법을 유지할 경우 독소조항은 어떻게 할 건가.)
=법을 뜯어보려고 한다. 독소조항은 국정원을 위해서도 없는 게 낫다. 첫째, 독소조항 제거하고 둘째로 그때 당시에 반드시 필요한 조항이 있는데 빠진 게 있으면 넣고. 셋째로 국민들이 반대하는 건 두려움 때문이다. 이 두려움을 해소할 방안을 넣어야 한다. 제가 찾아낸 방안은, 만약 직원들이 국민들이 우려하는 일, 아마도 사찰에 관계된 일을 범할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처벌 조항을 넣겠다. 예를 들면, 벌금형 이런 게 아니고 몇 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이다. 윤리헌장 둬서 “부당한 지시는 거부한다” 이런 건 크게 의미가 없다.
사이버테러방지법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이 법이 필요하다고 하면 처벌조항을 둬야 한다. 이 법이 필요없다고 하면 문제가 다르고. 만약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공소시효를 두지 않는, 감당못할 처벌조항을 두는 특별법이 필요하다. 이 법에 대해선 민간인 통신업자도 국정원의 압력을 받을 수 있으니 민간인도 처벌하겠다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 그리고 두번째로 중요한 건 점검 기능이다. 국정원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게 문제다. 예를 들면 정보위에서 이 부분에 한해선 답변 거부를 못하게 하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 이건 이설이 있더라. 법에 넣을 수 있는지 없는지. 대신 그럴 경우 국정원에선 정보가 새어나갈 우려를 말하니까, 정보위원이 이를 누설할 경우 헌법조항이긴 하지만 면책권을 일부 제한한다든가. 그런 고민이 필요하다.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개혁 방안 등 함께 그렸을 텐데, 앞으로 본인의 역할은.)
=지금부터의 그림은 서훈 원장이 그리는 거다. 지금부터 나는 감시자와 조력자로 남게 된다. 나는 ‘원오브뎀’(여러 조언자 중 하나)일 뿐이다. 대신 결과에 대한 검증은 국정원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하겠다. 여당이 돼서 국정원 개혁의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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