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이마트는 2014년 자사에 납품하는 업체 48곳에 경쟁사에 납품하는 상품의 매출액, 판매량, 납품단가 등 경영정보를 요구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됐다. 대기업이 납품업자에게 경쟁업체에 공급하는 상품의 공급조건에 관한 정보를 요구할 수 없도록 한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해서다. 불공정거래 등 경제범죄에 대해 전속고발권을 쥐고 있는 공정위가 이마트 같은 대기업을 고발하지 않는 걸로 결론지을 경우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이 사건을 심사한 뒤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하게 돼있지만 중기청은 ‘고발 요청하지 않음’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48개 기업이 부당한 요구를 당했지만 ‘직접적인 피해금액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례2. 엘지(LG) 계열사인 엘지하우시스는 2012~2013년 중소기업에 제작을 위탁하면서 뚜렷한 이유 없이 15차례에 걸쳐 제품의 상세 설계도면을 요구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수급업체에 기술 자료를 요구할 수 없게 한 하도급법을 위반한 행위다. 하지만 공정위는 엘지하우시스를 고발하지 않았고, 해당 사건을 검토한 중기청도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하지 않았다. 해당 중소기업의 엘지하우시스에 대한 ‘거래의존도는 높으나 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나 금전적 피해가 없다’는 것이었다.
공정위가 독점한 전속고발권의 폐단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2014년 감사원장·조달청장·중소기업청장(현재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가 반드시 고발에 나서도록 의무고발요청제가 도입됐지만 제도 시행 뒤 중기부가 공정위에 ‘대기업 갑질사건’ 고발을 요청한 것은 접수사건 66건 중 4건밖에 되지 않아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겨레>가 중기부의 대기업 갑질사건 66건의 심사보고서를 검토해보니 주먹구구식 기준을 적용해온 것으로 확인돼 사실상 정부가 ‘대기업 봐주기’에 급급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5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겨레>에 제공한 중기부 ‘의무고발요청 심사보고서’자료를 보면, 중기부는 포스텍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175개 하청업체의 하도급대금을 낮추거나 선급금을 늦게 지급하는 등 5개 위법행위를 했음에도 ‘고발요청하지 않음’으로 결론냈다. 위반 행위 기간이 4년이 넘을 정도로 길고, 위반행위가 ‘엄중히 근절해야 할 위반행위’라고 평가하면서도 업체당 평균 피해금액이 100만원대로 크지 않다는 이유였다. 중기부가 기준으로 삼은 평균 피해금액은 포스텍의 위법행위로 인한 피해금액 1억8600만원을 피해업체 수(175개)로 나눈 것이다. 제일기획 역시 185개 수급업체에게 하도급 대금을 늦게 주면서 이자를 주지 않는 등 법을 위반했지만 중기부는 고발을 요청하지 않았다. ‘엄중히 근절해야 할 위반 행위’로 평가하고 오랜 기간 많은 중소기업에 피해를 줬지만 “업체별 피해금액이 경미하다”는 것이었다. 이 역시 피해금액 3억719만원을 피해기업 수로 나눠 기계적으로 접근한 결과다.
중기부는 2014년 이후 고발요청 검토대상으로 접수된 대기업 갑질사건 66건 중 31건에 대해 “피해 중소기업들의 피해 금액이 적다”고 평가했다. 중기부 공무원 3명, 외부 심사위원 4명으로 구성된 의무고발요청 심사위원회는 △위반행위 기간 △거래액 대비 피해액 규모 △피해기업 수 △(피해 업체의) 종업원 감소 정도 △위반기업의 시장점유율 △(중소기업의) 거래의존도 △피해 정도 등 7가지 지표를 놓고 심각성에 따라 ‘상·중·하’로 점수를 매기는데 총합이 2.0을 넘기면 고발 대상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고발요청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피해 정도’를 피해업체들의 평균 피해금액으로 판단해선 안된다는 게 우 의원의 지적이다. “업체별 피해 금액이 서로 다르고 피해기업이 많을수록 평균 피해금액은 줄어드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자의적 기준”이라는 것이다.
중기부는 납품업체들의 경영정보를 요구한 대형마트, 백화점, 대기업 홈쇼핑사들에게도 “피해액이 없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줬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2013~2014년 납품업체 134곳에게 경쟁사의 공급조건, 입점조건 등 경영정보를 요구해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했지만 “수급사업자들의 금전적 피해가 없다”며 공정위에 고발 요청을 하지 않았다. “위반행위로 인해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고 “엄중히 근절해야 할 위반 행위”라면서도 드러난 피해금액만을 평가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지에스홈쇼핑도 납품업체 353곳에 경쟁 홈쇼핑업체에 대한 매출액 정보를 요구했지만 피해액이 없어 고발되지 않았다.
중소기업을 보호해야할 중기부에서 이처럼 요식행위에 가까운 심사가 이뤄진 것은 공정위가 정보를 독점한 상황에서 부실한 자료에 근거해 심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기부는 공정위로부터 의결서 외에 해당 기업의 내부자료 등 근거자료를 제공받지 못한 채 필요한 자료만 열람할 수 있는 실정이다. 4년간 중기부가 공정위부터 의무고발 요청심사를 위해 받은 자료는 28건에 그쳤다. 우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중기부의 역할이 커진 상황에서 걸맞는 역량을 갖추는 게 중소기업 중심 경제와 골목상권 보호라는 국정과제 수행에도 필수적”이라며 “중기부의 중소기업 피해사건 고발요청을 위한 심사체계를 강화하고, 공정위와 자료 협조체계를 재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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