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비자금 수사에 대한 시즌2, 시즌3가 열릴 수 있습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자가 가져간 종이를 끌어당겨 그 위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 개수를 직접 쓰면서 이런 의욕을 내비쳤다. 그의 추적 결과, 이 회장이 2008년 ‘조준웅 특검팀’이 찾아낸 차명계좌 1199개에 보관된 4조4천억원을 실명전환이나 세금 납부 없이 몰래 빼간 사실이 드러났고, 금융당국은 결국 이 재산에 대한 과세 방침과 차명계좌 전수조사를 약속한 바 있다.
박 의원은 31일 국회에서 <한겨레>와 만나 금융감독원이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전수조사한 결과가 나오면 “제2 삼성특검 필요성을 여당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회장 차명계좌 전수조사 이후 ‘조준웅 삼성특검’ 수사의 신뢰성, (이 회장이 세금 납부 없이 차명재산을 가져가도록 방조하는 등의) 금융감독 처분 적절성을 분석해 당에 보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지난 2008년 ‘조준웅 특검’이 이 회장의 차명계좌들에 담긴 4조4천억원의 재산을 찾아냈지만, 이를 부친 이병철 전 회장이 물려준 상속재산이라고 ‘정리’한 부분에 대한 재규명을 강조했다. 그는 “이병철 전 회장은 1987년에 사망했는데, 차명계좌들이 대부분 1993년 이후 만들어졌고, 2000년 이후에도 673개 계좌, 심지어 특검(2008년) 바로 직전 해인 2007년에 40개 계좌가 개설됐다. 이미 사망한 이 전 회장의 상속재산이 어떻게 2007년 계좌에 들어가 운영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국민들은 상속재산이 아닌 비자금이라 의심한다. 새로운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차명계좌 개설 시기와 계좌별 금액 등이 더 구체적으로 확인돼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실명제법이 시행된 1993년 이전 개설된 차명계좌의 위법에 대해선 원금의 50%까지 징벌 징수할 수 있는 만큼, 1993년 이전 만들어진 이 회장의 차명계좌 규모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별개로 이건희 회장과 같은 ‘차명재산 빼가기’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기관의 수사 결과 차명계좌가 확인되면 철저히 과세가 이뤄지도록 하는 내용의 금융실명제법 개정안도 내기로 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뒤늦게 이 회장 재산 과세에 나선 것은 “모피아(재무부 출신 관료) 집단인 금융당국의 백기투항”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 되어 가능했던 일”이라 평가했다. 그는 10월 중순부터 열린 국회 국정감사 두 달 전부터 ‘의원실 보좌진’과 함께 이 사안에 매달렸다. 이 회장이 차명재산을 빼간 사실을 확인한 뒤 이번 건의 문제 해결을 위해 당 지도부의 공개발언을 요청했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따로 만나 문제의 심각성을 전달하기도 했다. 당·청의 이런 분위기가 결국 금융당국의 변화를 이끌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진보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여당 초선 의원이 된 그는 “제대로 과세하는 것이 경제정의, 문재인 정부의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국민상식에 맞는다”고 강조했다. 송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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