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박주원 최고위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 사건의 제보자였다는 보도로 논란이 불거진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박지원 의원, 이용호 정책위의장, 김동철 원내대표, 안철수 대표. 당사자인 박 최고위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이명박 정부 초기 불거졌던 ‘김대중 전 대통령 100억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CD) 비자금’ 의혹의 제보자가 국민의당 박주원 최고위원이라는 언론 보도에 당이 발칵 뒤집혔다. 박 최고위원이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적극 주장하며 최근 안철수 대표를 지원해왔다는 점에서, 향후 통합 관련 안 대표의 운신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8일 <경향신문>은 2008년 10월 당시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제기한 ‘디제이(DJ) 비자금’ 의혹의 제보자가 박 최고위원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의혹 제기 이후 2009년 2월 검찰은 “양도성 예금증서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관련이 없다”고 밝혔고, 김 전 대통령 쪽의 고소로 이어져 주 전 의원은 2010년 9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 사건의 발단이 다른 정당도 아닌 호남 기반에 ‘디제이 정신 계승’을 강조하는 국민의당 현직 지도부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박 최고위원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검찰에 근무할 때 비자금 관련 양도성 예금증서에 관한 다양한 제보를 받아 추적해서 보고한 적은 몇 차례 있지만 누구의 비자금이라고 특정해서 준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주성영 의원이 내가 대검찰청에 근무할 때 검사였고, 대화 과정에서 다양한 정보 활동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대북송금 수사 전후로 해서 많은 불법 양도성 예금증서들이 입수됐고 그런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추적하고 대화하는 과정은 있었지만 ‘디제이’로 특정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파장이 커지자 국민의당은 이날 오후 긴급 국회의원·최고위원 연석회의를 열고, 조만간 당무위원회를 열어 박 최고위원의 당원권 정지와 최고위원직 사퇴 절차를 밟기로 했다. 특히 호남 의원들은 총공세를 퍼부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박주선 의원은 “주성영 전 의원의 과거 폭로와 관련해 국정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했다. 박지원 의원도 “당시에 (제보자가) 박주원 한나라당 안산시장 후보라고 회자가 됐었다”며 “그런 일을 했다면 국민에게 고백하고 통렬한 반성과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평화센터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박 최고위원에 대해 법적 검토를 하고 있다”며 “진실을 명백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반면 박 최고위원은 이날 저녁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짜 뉴스”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고, 최고위원직도 사퇴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주성영 전 의원과 이날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며 “(주 전 의원도)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당이 또 한번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특히 호남 중진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안철수 대표의 ‘통합’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안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사실관계를 분명히 따져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음해인지 여부를 밝혀야 하고, 사실임이 확인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처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이면 상응하는 조처”를 얘기하면서도 10여년 전 일이 이번에 튀어나온 ‘배경’에 의구심을 내비친 것이다. 안 대표는 기자들이 이 사건과 통합 논의의 연관성을 묻자 “다 별개의 사안들 아니겠냐”고 답했다. 호남 중진의원들은 9일부터 2박3일로 예정된 안 대표의 호남 방문 일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했지만, 안 대표 쪽은 강행 의지를 밝혔다.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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