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하 더불어청소년 위원장은 지난해 추미애 민주당 대표에게 청소년 의견을 전달했다.(왼쪽) 최민창 바른미래 위원장은 지난해 ‘젊은 보수’ 주제의 세미나를 국회에서 열었 고(가운데), 정의당 예비당원협의체 ‘허들’의 문준혁 위원장은 지난해 청소년 참정권 보장 헌법소원 청구인단 소속으로 기자회견에 나섰다. 더불어청소년·바른미래·허들 제공
정의당 예비당원협의체 ‘허들’의 문준혁(17·검정고시 준비) 위원장은 2016년 12월 경남 사천의 한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학생인권 개선을 학교에 요구해도 응답이 없자 ‘정당 활동을 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교 학칙이 정당 활동을 금지해 그는 학교에서 나오는 길을 택했다. 지난 두 번의 대통령선거에서 보수 후보를 찍은 아버지도 “내 선택을 믿고 용인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엔 정당법이 버티고 있었다. 정당법은 법적 성인인 만 19살 이상부터 당원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정의당은 법을 어기지 않고 청소년 정치 참여를 지원하기 위해 예비당원제를 뒀다. 문 위원장은 정식 당원이 아니어서 당의 결정 사항 등에 대한 의결권이 없다. ‘더불어청소년’의 양준하(17·부천고2) 위원장과 ‘바른미래’의 최민창(18·부산외대 1학년)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과 바른정당의 청소년지지포럼을 각각 만들어 정당 연계 활동을 한다. 역시 정당법에 막혀 당의 공식 조직에 편입되지 못했다. 최 위원장은 대학 1학년이지만 만 19살이 되지 않아 당원이 되지 못했다.
법은 청소년을 당원 자격도 줄 수 없는 존재라고 제한하지만, 정치를 향한 이들의 관심과 활동은 법의 규정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문 위원장은 “친척들이 ‘왜 작은 정당에 들어가냐’고 했지만, ‘정의로운 복지국가,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내건 당의 지향이 나와 비슷했다. 진보정당이지만 사천에서 지역 기반도 있어 정의당을 택했다”고 했다. 최 위원장이 ‘바른미래’를 만든 이유는 ‘박근혜·최순실 사건’을 거치면서 “보수가 개혁돼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양 위원장은 “민주사회에서 지지 정당에 참여해 활동하는 건 당연한 권리”라며 “당에 가입할 수 없으니 청소년 의견을 당에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더불어청소년’ 모임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역사 국정교과서 문제(문 위원장),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최 위원장) 등이 정치에 관심을 키운 계기였다고 이들은 말한다.
‘차별을 뛰어넘자’는 뜻의 ‘허들’은 2017년 4월에 생겼다. 의견을 개진하며 활동하는 규모는 50여명이다. 이들 가운데 문 위원장을 포함한 8명은 지난해 2월 ‘정당 가입 연령 제한 폐지’ 등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한 헌법소원 청구인단으로도 참여했다. 허들은 정의당 당대회에서 청소년참정권 특별결의문도 통과시켰다. ‘바른미래’는 지난해 5월 결성됐다. 모임에 나오고 의견도 내는 규모는 14살 학생 등 70여명이다. 현안 논평도 내는 바른미래는 ‘참정권과 청소년 정치교육’ 주제의 2차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다.
‘더불어청소년’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645명이 가입했다. 그 가운데 40여명이 활발히 활동한다. 모임에는 중학교 1학년도 있다. 양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이 모임 창립식 직후 청소년 의견을 모아 추미애 당 대표에게 전달했다. 대통령 철학을 들여다보기 위해 전·현 대통령(김대중·노무현·문재인) 연설문을 읽는 모임도 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걸씨를 초청해 ‘햇볕정책’을 주제로 간담회도 했다. 원내 정당 가운데 자유한국당·국민의당도 청소년지지포럼이 있지만, 활성화된 수준은 아니다.
세 명의 위원장은 “정당법에서 정당 가입 연령을 제한하지 말고, 당 자율적으로 가입 나이를 정하되 나이를 낮추는 방향으로 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국·프랑스·독일 등은 법이 아닌 정당 자체적으로 당원 가입 나이를 정한다. 영국 노동당, 독일 사회민주당은 14살부터 당원 자격을 준다. 유럽에서 ‘10대 당원-20대 의원-30·40대 장관·대통령’ 코스를 밟는 사례가 나오는 것은 청소년 당원제가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국회에는 민주당 송옥주·이재정·소병훈·표창원 의원이 정당 가입 연령 제한을 없애는 정당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박주민 의원은 당원 자격을 15살 이상으로 낮추는 개정안을 냈다. 하지만 법안만 제출됐을 뿐 개정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 등 반대론자들은 ‘어린 나이부터 정당 가입을 허용하면 부모 등의 영향을 받아 당을 선택하고, 그 당의 정치논리에 휩쓸린다’고 주장한다.
문 위원장은 고개를 젓는다. “정치적 주장에 휩쓸리는 현상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이 없거나, 또는 있어도 생길 수 있다. 청소년에게만 그런 논리를 들이대는 건 이중 잣대다.” 그는 “지금은 정의당이 최선의 선택이지만 미래에도 정의당에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며 “어린 나이부터 당을 경험하며 자신의 생각과 정치성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성인들은 가치관이 굳어 자기 생각에 맞거나 유리한 것만 듣는 경향이 있지만, 청소년들은 오히려 온라인 등에서 이념적으로 좌우 쪽 얘기를 함께 많이 접한다”며 “그런 면에서 청소년이 더 열려 있다”고 했다. 양 위원장은 “19살 성인이 된다고 갑자기 정치적으로 성숙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정당에 참여하면 민주시민이 되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청소년은 가입한 정당이 자기랑 맞지 않으면 수정할 수 있다. 청소년이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들은 정당에 참여하면서도 ‘당의 주변인’인 탓에 “현재 당을 같이 만들어가는 동료가 아니라 미래를 이끌 세대” 정도로 여기는 당의 일부 시선에 아쉬움도 내비쳤다. 송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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