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얻은 지지율에 비해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간 의석 도둑들, 54% 지지를 얻고 90%의 의석을 가져가는 표 도둑까지 선거법 개정으로 완전히 잡는 포복절도의 세상을 만들겠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신년 인사회에서 “흔히 쓰는 포복(抱腹·배를 움켜쥐고 크게 웃음)과 달리, ‘가득 찰 포(飽), 배 복(腹)’으로 배를 가득 차게 만들고, 절도(絶盜)는 도둑을 근절하겠다는 의미”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노회찬 원내대표의 말처럼 ‘의석 도둑’을 방지하려면 선거법 개정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까?
2018년 들어 개헌과 선거법 개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회 입법조사처가 “진보정당 활성화 막는 제도를 개선하고, 진보정당의 존립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 눈길을 끌고 있다.
(▶참고 기사: 선거구제 개편 찬성, 반대보다 2배 이상 높아)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김종갑 박사는 지난 3일 낸 <이슈와 논점> 보고서 ‘19대 대선과 진보정당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에서 “정당체제에서 한국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협소하고, 이로 인해 다원화된 사회에 부합하는 다양한 가치와 이익이 대표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 비례대표 의석 늘리기, 선거구제 개편
그는 보고서에서 “전체 의석에서 비례의석이 차지하는 비중(16%)이 작아 군소정당이 비례의석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현행 비례의석의 비율을 높이고, 봉쇄조항(현행 3%)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하향 조정해 정의당과 같은 군소정당의 의석확보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진보정당과 군소정당의 의석확보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주목되는 방안에는 비례의석 비율 상향 조정 외에도 ‘소선거구제 개편’이 있다. 좁은 선거구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만 당선되기 때문에 거대 정당에 유리한 현행 승자독식 선거구제도를 고쳐 선거구 범위를 넓히고, 2~3명의 후보가 당선되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특히 소선거구제의 경우 30~40%의 유권자 지지만 받아도 100% 유권자를 대표하는 모순이 발생하기도 한다. 김 박사는 “중·대선거구제가 군소정당의 의석수를 높이고, 사표(死票)를 줄일 가능성도 크다”며 “단점으로 낮은 투표율로 당선될 수도 있다고 하는 데 큰 문제는 아닌 거 같고, 선거가 광역화되면 비용이 늘어나는 문제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 추혜선 수석대변인 등 지도부가 무술년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황금개 저금통을 들고 “정의당을 키워달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달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주목받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금처럼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 투표를 함께하되,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정당이 가져갈 수 있는 의석수를 배분하고, 정당별로 배분된 의석수에서 지역구 의원 의석수를 뺀 숫자는 비례대표 의원으로 채우는 제도다. 예를 들어, 300명 국회의원 가운데 200명을 지역구 의원으로 뽑고, 100명은 연동형 비례대표로 뽑는데 한 정당이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은 30%를 기록하고 지역구 의원은 10명 뽑히는 데 그쳤을 경우 30%를 채울 수 있는 나머지 20명을 비례대표 의원으로 앉히는 것이다. 반대로 정당득표율은 20%를 기록했는데, 지역구 의원은 이미 40명을 당선시켜 이미 정당득표율을 초과한 경우 이 정당은 비례대표를 배분받지 못한다. 이 제도는 득표율대로 의석이 배분되기 때문에 사표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교섭단체 위주의 배분비율 조정
보고서는 지난 19대 대선에서 진보정당인 정의당의 약진이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정의당이 19대 대선에서 얻은 6.17%의 득표율은 역대 대선에서 진보정당이 얻은 득표율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창원에 출마하기로 한 노회찬 정의당 공동선대위원장이 4일 오전 국회에서 심상정 대표한테서 허리띠를 선물 받은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심 대표는 영남 벨트를 장악하라는 뜻에서 벨트를 선물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하지만 정의당은 약진하는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재정 상황에 시달리고 있다. 정당의 정치활동과 조직운영에 드는 정치자금은 당비, 기탁금, 국고보조금으로 나뉘는데 정의당은 보조금의 비율이 24.5%로 더불어민주당(37.3%)이나 자유한국당(34.9%)에 견주어 낮다.
김 박사는 정의당의 보조금이 적은 원인으로 ‘교섭단체 위주의 배분’을 꼽았다. 그는 이러한 배분 방식이 “군소정당의 재정적 기반을 취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교섭단체에 배분되는 보조금의 비중을 낮추거나 득표율에 따른 배분비율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현행 정치자금법을 보면, 국고보조금은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총액의 50%가 우선 균등 배분되고, 5석 이상 20석 미만의 의석을 가진 정당에 총액의 5%씩, 5석 미만의 정당에는 2%씩 배분된다. 20대 국회 기준으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이 총액 50%를 균등 배분받고, 바른정당과 정의당이 총액의 5%씩 배분받는 셈이다. 나머지 보조금의 절반은 국회 의석을 가진 정당에 의석수 비율로, 또 다른 절반은 최근 실시한 국회의원 선거의 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 정당의 설립요건 조정, 정의당도 외연 확대 노력해야
보고서는 진보정당이 비판적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설립요건을 완화하고 등록조건을 하향 조정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정당법은 수도에 중앙당을 비롯해 5개 시도부에 지부를 둬야 하고, 시도마다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해야 한다. 이러한 설립요건은 군소정당이 충족하기 쉽지 않다. 이를 완화해 지역 단위에서도 다양한 이념과 노선을 표방하는 ‘지역정당’ 창당을 용이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의당에 대해서는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정당의 응집력이 높지만, 반대로 그것이 외연 확장에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며 “당내 의사결정과 공직 후보 결정에 일반 유권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외부인재 영입에도 나서 일반 유권자를 지지층으로 포섭하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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