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삼성 불법파견 의혹을 조사했던 일선 노동청의 ‘불법파견 소지가 강하다’는 내용의 의견 보고서를 두 번이나 무시하고,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사 관계를 ‘적법 도급’이라고 결론 내린 것으로 25일 드러났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고용부 간부가 “불법파견 관련해 삼성 쪽 얘기를 잘 들어주라”는 전자우편까지 근로감독관들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 적폐청산을 위해 출범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개혁위원회)는 이 사건 당사자 등을 직접 조사한 뒤 부적절한 문제가 있었다고 결론짓고, 이르면 29일 검찰 수사협조 등의 내용이 담긴 권고안을 의결할 것으로 보인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겨레> 취재 결과 등을 종합하면, 삼성전자서비스의 근로감독 보고서를 총괄했던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은 2013년 7월19일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에 대한 지휘·명령관계가 인정된다’며 불법파견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노동부 내 주무부서인 고용차별개선과 역시 이보다 2~3일 앞서 ‘수사로 전환하지 않고,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수사 권고가 필요하다’며 수시 근로감독 기간 연장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냈다. 앞서 고용부는 “불법파견 의혹이 제기된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해 한달간 수시 근로감독에 들어간다”(2013년 6월)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중부노동청의 보고서가 고용부에 보고된 직후인 7월23일 권아무개 고용부 노동정책실장(1급) 주재 회의를 거치면서 고용부의 최종 결과가 뒤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서울지방노동청장을 비롯해 고용부 고위 간부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조사 미진’ 등의 사유로 수시 근로감독 기간을 연장할 것을 중부노동청에 요구했다. 이들은 중부청이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사의 ‘지휘 관계’를 인정한 것을 비판하며 ‘감독관들이 가치판단을 내리지 말고, 사실관계만 적시하라’고 했다. 고용부 안팎에서는 주무부서와 일선 노동청이 결론 내린 사안에 대해, 고용부 고위급 회의가 별도로 열리고 결론마저 바뀐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보고 있다. 고용부 안에선 이 회의가 열린 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가 삼성 쪽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고용부를 방문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고용부와 개혁위원회 안팎에서는 당시 경총과 삼성 등이 고용부를 상대로 강력한 압박 등을 가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실제 이 회의를 기점으로 근로감독관들의 감독 방향 등 현장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회의 이후 현장에선 결론은 내리지 않은 채 고용부의 지시대로 사실관계만 정리한 보고서가 작성됐다. 유일하게 삼성전자서비스 본사가 위치한 ‘경기지청 본사팀’만 강하게 불법파견이라는 의견이 담긴 ‘2차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상황이 달라지지 않자 고용부 쪽은 외부 자문위원인 변호사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며 또다시 결론을 미뤘다. 하지만 고용부는 변호사들의 개별 의견서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적법 도급’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최종보고서 초안을 작성했다. 변호사들은 이후 고용부의 결론과 같은 ‘적법 도급’이라는 의견서를 제출했고, 고용부는 2013년 9월16일 최종결과를 발표했다.
또 개혁위 조사 결과, 당시 임아무개 근로개혁정책관이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을 조사하고 있는 일선 노동청의 근로감독관에게 “(보고서에) 너무 특정 세력의 얘기만 있고, 회사(삼성)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으니 잘 들어달라. 이전에 ‘불법파견 소지가 강하다’는 본부 근로감독관의 전자우편은 일개 개인의 의견일 뿐이지 본부 의견이 아니다” 등의 내용의 전자우편을 보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개혁위원회 관계자는 “검찰이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와해’ 공작을 수사 중인 만큼 검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권고안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임 전 정책관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지만, 답이 없었다. 권 전 실장은 통화에서 “노동부에서 이미 조사를 받았다”고만 밝혔다. 강병원 의원은 “고용부가 일선 노동청 의견과 다른 결론을 내린 배경에 삼성의 압력이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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