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예방한 뒤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20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을 두고 여야가 첨예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가장 뜨거운 전선은 법제사법위원장을 제1당(더불어민주당)과 제2당(자유한국당) 중 어느 당에서 맡느냐입니다. 두 당은 국회의장을 민주당이, 부의장 두 자리를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맡고 18개 상임위를 민주당 8, 한국당 7, 바른미래 2, 평화와 정의 의원모임(민주평화당과 정의당) 1개로 각각 나누는 데 어느정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안 통과의 관문이 되는 법사위원장을 두곤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이들 경쟁이 ‘1부 리그’라면, 제3당과 4·5당이 펼치는 2부 리그 경쟁도 있습니다. 30석의 바른미래당과 20석의 평화와 정의 의원모임이 싸우고 있는데요. 1부 리그 못지 않게 불꽃이 튑니다. 평화와 정의는 상임위원장 1개만 가져가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국회 부의장 자리를 추가로 주거나, 부의장을 포기해야 한다면 상임위원장 자리를 2개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장과 두 명의 부의장 등 세 자리는 국회의원들의 투표로 뽑게 돼 있지만 관례상 의장은 여당이, 부의장은 의석수에 따라 나머지 야당들이 맡아왔습니다. 즉 부의장 두 자리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몫으로 여겨졌는데요. 바른미래당 몫을 자신들에게 달라고 평화와 정의가 요구하고 나선 겁니다. 평화와 정의에선 4선 조배숙 대표가 부의장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국민의당 시절 조 대표는 ‘여성 최초의 국회 부의장’을 내세우며 당내 경선에 나섰으나 박주선 전 부의장에게 밀린 바 있죠. 14석의 민주평화당과 6석의 정의당은 일찌감치 공동교섭단체(최소 20석)를 구성하며 이번 협상에 대비했습니다.
130석→150석
평화와 정의가 관례와 다른 요구를 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많은 개혁 과제를 추진하려 하고 있지만 입법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6·13 지방선거와 같이 치른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는 의원수 300명을 꽉 채우게 됐는데요. 민주당은 130석으로 의석을 늘렸지만 절반인 150석에는 20석이 모자랍니다. 평화와 정의(20석)가 힘을 합하면 딱 150석이 됩니다. 여기에 바른미래당 소속이지만 마음은 민주평화당에 와 있는 3명과, 민중당 1명 등까지 합하면 과반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넘기게 되죠. 각종 임명동의안 통과(재적의원 과반출석에 출석의원 과반찬성) 등에 필요한 기준을 넘게 됩니다. 평화와 정의는 20석으로 캐스팅보터 역할을 쏠쏠히 수행할 수 있게 된 거죠. 이를 지렛대 삼아 부의장 자리를 노리거나, 상임위원장을 두 자리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향후 예산과 여러 법안 통과에서 또다시 목소리를 높일 동력을 축적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사실 캐스팅보터는 제3당이었던 옛 국민의당, 지금의 바른미래당이 자주 사용하던 용어였는데요. 민주평화당이 정의당과 공동교섭단체를 이루고 민주당 의석수도 130석으로 늘어나면서 캐스팅보터로서의 바른미래당 입지는 다소 좁아졌습니다. 바른미래당 없이도 범여권이 150석을 넘길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국회 부의장과 상임위원장 두 자리를 노리던 바른미래당 입장에선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게 된 상황입니다. 이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사이에서 누구 손을 들어줄지를 협상 카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회 교섭단체 원내대표와 수석부대표들이 9일 국회에서 20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협상을 위한 회동을 하고 있다. 왼쪽 셋째부터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장병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150석→180석
‘캐스팅보터’ 역할이 축소됐다는 평가가 나오자 김관영 원내대표가 내세운 건 ‘180석 카드’입니다. 그는 지난달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선진화법때문에 한 정당과 연합 세력이 180석을 이루지 못하면 국회에서 의안이 자동상정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쟁점 법안의 경우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재적의원 5분의3(180석) 이상이 동의해야 신속처리법안으로 상정할 수 있다는 점을 앞세운 것입니다. 민주당 130석, 평화와 정의 20석에 바른미래당 30석을 합하면 딱 180석이 됩니다. 바른미래당이 협조해야만 자유한국당을 고립시킬 수 있으니 20석만 믿고 30석을 만만히 보지 말라는 취지인데요. 이 역시 여당을 상대로 한 이번 협상에 지렛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김관영 원내대표가 지역구를 호남에 두고 있어 개혁 입법에 우호적일 수 있다고 기대되는 점도 그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평화와 정의는 당연히 이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부의장 두 명 모두 보수 정당이 맡으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이에 김관영 원내대표는 오늘(9일) <가톨릭평화방송(cpbc)>에 나와 “저희 당을 보수로 분류하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회의 오랜 관행 또 상식에 근거해서 주장하고 협상을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바른미래당은 이 ‘180석 카드’를 통해 대여 협상에서 실리를 취하려는 동시에, ‘평화와 정의’와는 캐스팅보터 경쟁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부의장’ 다툼은 그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바른미래당에서는 5선 정병국 의원과 4선 주승용 의원 등이 부의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는데요. 각각 수도권과 호남 출신,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출신인 두 사람은 성향이 다른 것으로 분류됩니다. 당내 경선에 부쳐졌을 때 누가 당선되느냐도 바른미래당의 향후 기조와 관련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월 탄생한 뒤 바른미래당은 출신 정당과 기반 지역에 따라 정체성 혼란을 겪어왔는데요. 이게 좀 정리가 돼야 바른미래당이 결정적 순간 어떤 선택을 할지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