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추모의 마음을 적은 시민들의 노란 포스트잇이 25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벽에 빼곡히 붙어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어떤 이의 마지막 모습은 때로 그가 살아온 삶 전체를 함축한다. 특권을 거부했던 국회의원, 진영을 넘어 존경을 받아온 정치인 노회찬을 기리는 장례식장 정경은 그가 걸어온 길들을 닮아 있었다. 특권도 경계도 없는 추모의 풍경이다.
“거기에는 어떤 특권도 없었다. 나라의 ‘한다’ 하는 고위층도 추모 행렬에 서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옮겨서야 조문을 할 수 있었다. 노회찬 의원을 추모하는 마음에서는 모두 평등했고, 어떤 새치기도 건너뛰기도 없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빈소에 다녀온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은 글이다. 박래군 이사의 설명대로 노 의원의 장례식장에선 다른 장례식장에서 본 적 없는 풍경들이 눈에 띄었다. ‘권력자’와 ‘명사’ 들이 일반인 조문객과 뒤섞여 줄서서 기다리고 빈소에 함께 입장해 문상한 것이다. 장례 이틀째인 24일부터 조문객이 몰려 대기자 줄이 수십미터씩 늘어나자 대기자들 가운데서 어렵지 않게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를 볼 수 있게 됐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등 여야의 정치인들이나 이재명 경기지사, 손석희 <제이티비시>(JTBC) 사장 등이 자연스럽게 일반인 조문객들과 함께 줄을 서서 몇십분씩 기다린 뒤에 조문했다. ‘특권’을 주장한 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정의당은 이날 오후 10시 현재 1만8101명이 노 의원의 빈소를 찾았다고 밝혔다.
조문객들의 대기 시간이 길어질 것을 걱정한 정의당 쪽에서 문상 절차를 간소화하면서 빈소 안에서도 일반 조문객과 명사들이 뒤섞였다. 정의당은 조문객이 몰려든 24일부터는 될 수 있는 한 단독 조문을 받지 않고 헌화·분향·큰절·맞절 등의 절차도 생략했다. 10~20여명의 조문객이 신발도 벗지 않고 동시에 빈소에 입장해 묵념을 하는 것으로 절차를 가볍게 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도,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여러 시민과 함께 빈소에 입장해 고인을 기렸다.
노 의원의 마지막 가는 길엔 그야말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함께해 우리 사회 전 분야에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뛰어온 그의 정치 이력을 방증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문제로 투쟁하다 최근 삼성의 조정 합의를 이끌어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복직 투쟁에서 승리한 케이티엑스(KTX) 해고 승무원 등이 빈소를 찾아 기쁨을 함께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한결같이 ‘소수자’를 대변했던 그의 부재가 더 크게 다가올 이들도 있다. 2008년 노 의원이 서울 노원병 지역에 출마했을 때 지지를 선언했던 방송인 하리수씨도 이날 빈소를 찾았다. 노 의원은 성소수자들의 호적상 성별을 바꿀 수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2005년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했던 탓에 장애인단체들의 아쉬움도 크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그가 숨진 뒤 곧바로 추모논평을 냈고, 단체 회원들은 휠체어를 타고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노 의원의 정치적 명운을 가른 ‘삼성 엑스(X)파일 사건’의 당사자인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부터 서청원·나경원·원유철 의원(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의 정치인들도 빈소를 찾았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돌아가시고 나니 진영을 넘어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면에 대해 공감받았던 분이라는 게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엄지원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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