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대위원장이 지난 1일 국회에서 ‘민생현장 방문결과’에 대한 브리핑을 위한 회의를 기다리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역 당원들을 만나면 ‘당내에서 안 싸워서 좋다’고 한다.”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보수 재건’을 내걸며 출범한 자유한국당 혁신 비상대책위원회가 17일로 한달을 맞는다. 한 자유한국당 초선 의원은 16일 ‘비대위 한달’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노무현 청와대’ 정책실장 출신인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이끄는 혁신비대위는 선거 패배 책임공방으로 세대-계파 갈등을 겪던 자유한국당을 일단 ‘안정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반공보수와의 결별, 친박근혜계 인적 청산 등 핵심적인 부분은 피한 채, ‘국가주의’ 등 담론정치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수면 아래로 잠시 가라앉아 있는 갈등이 언제든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 돌아오지 않는 민심
혁신비대위 출범 이후 김병준 위원장이 가장 공들인 부분은 ‘막말 금지’인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전 대표의 막말에 대한 보수지지층 이반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지난달 30일 “보수이든 진보이든 정치인은 말을 아름답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지난 1일 민생 탐방 뒤 “(시민들에게서) ‘싸움하지 말라’ ‘험하게 말하지 말라’ 등의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또 의원들에게 직접 편지를 쓰고, 홍준표 전 대표 시절 중단한 중진의원 회의를 부활시켜 당내 안정에 힘을 썼다. 홍 전 대표와의 차별화 전략이다.
하지만 떠나간 민심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한국갤럽의 8월 둘째주 여론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를 보면,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11%다. 6·13 지방선거 직후인 6월 셋째주 지지율(11%)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같은 기간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53%→40%로 13%포인트 하락하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역시 75%에서 58%로 내려앉았지만, 반사이익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정의당 지지율이 9%→16%로 두배 가까이 올랐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연구위원은 “당이 어려울 때 세워지는 것이 비대위다. 그러려면 ‘무엇을 반성하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자유한국당 비대위는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짚었다.
■ 요원한 쇄신, 팔짱 낀 의원들
자유한국당의 고질적인 문제인 계파갈등은 혁신비대위의 ‘묵인’ 속에 잠복해 있다. 지방선거 직후 친박-비박계가 갈라져 책임공방을 벌이고, 초선 의원들이 중진들의 책임을 거론하며 탈당을 요구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혁신의 주요 쟁점이 ‘인적 청산’이라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취임 직후 ‘반공보수와의 결별’을 언급하고, 홍 전 대표의 최측근이던 김대식 전 여의도연구원장을 경질하는 등 쇄신의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거기서 멈췄다. 대신 문재인 정부를 향해 ‘국가주의’ 공세를 펼치는 등 가치 논쟁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당내에선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다”(홍문표 의원) “메시지가 품격있게 나온다”(추경호 의원) 등의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의원들을 직접 겨냥하지 않는 김 위원장에 대한 ‘립서비스’ 성격에 가깝다는 것이 중론이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김 위원장이) 공천권이나 인적 쇄신에 손대지 않다 보니, (현 체제가) 의원들 각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없다. 지금은 ‘팔짱 끼고 지켜보는 중’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일단 비대위는 ‘가치·좌표재정립위원회’ 등 4개의 소위원회 논의를 거쳐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고 공천 시스템 개혁 등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당무감사를 통한 당협위원장 교체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을 의원들이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한 중진 의원은 “선출되지 않은 리더십을 따를 이유가 없다”고 했다.
■ 비대위 장악력 약화…홍준표 복귀설도
자유한국당 비대위가 이처럼 겉도는 데는 김병준 위원장을 포함한 비대위원들의 당내 기반이 단단하지 않은 것도 주된 이유다. 김 위원장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없고, 김 위원장에게 권한을 줄 생각도 없다는 게 의원들의 속내다. 이상일 입소스코리아 본부장은 “의원들이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2004년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가진 장악력이나, 2016년 김종인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문재인 대표에게서 위임받은 권한 등이 김병준 위원장에게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숨죽이고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가을부터 전당대회 개최를 본격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당의 존재감이 전혀 없다. 김 위원장 자체가 대중을 흡인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며 “책임있는 리더십을 최대한 빨리 선출해야 한다”고 했다. 더욱이 홍준표 전 대표의 다음달 귀국을 앞두고, ‘무주공산’ 자유한국당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중진들의 전당대회 요구와 홍 전 대표의 당권 도전설이 함께 엮이는 상황이다. 한 당직자는 “모든 주자들이 나온 통합전당대회를 통해 집단지도체제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훈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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