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에 “대표 당선 희소식에 통일 여명 밝아”
정동영엔 “무슨 활동 벌이는가 물어보니 ‘백의종군한다더라’” 농담
이해찬 “남북관계 잘 나가다 정권 빼앗겨 손실 봤다” 답사
정동영 “10년 전에 뵐 때나 변함 없다” 인사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찾은 여야 3당 대표가 19일 오전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면담을 위해 접견실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미 정의당 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영남 위원장,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11년만에 다시 만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리해찬(이해찬) 선생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직에 올라섰다는 희소식이 전파하자 다시금 통일의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리라는 신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하며 이 대표를 추어올렸다. 19일 이 대표 등 3당 대표들을 만난 김 위원장은 의전과 격식에 능한 외교전문가라는 평판답게 ‘감각 터지는’ 인사말들을 내놓으며 정치력을 뽐냈다.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을 방문 중인 이 대표와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날 평양 만수대의사당 접견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면담을 가졌다. 김 위원장은 시작부터 발군의 정무감각을 드러냈다. 그는 “바쁘신 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어 고맙다”는 이 대표에게 “원래 어제 일찍 여러분들하고 이 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나눴더라면 그저 하고 싶은 말을 다 툭 털어놓고 할 수 있었겠는데, 시간이 제한됐기 때문에 좀 추려서 박사 논문 통과시킬 때 변론하는 식으로 아마 나아가야 할 것 같다”고 웃으며 답했다. 박사 논문 심사 때 심사위원과 일문일답을 나누듯 속전속결로 면담을 진행하자는 취지다. 전날 일정이 꼬이면서 이날 오전 긴급히 3당 대표를 만나게 되는 바람에 여유있게 면담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된 데 대해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간 것이다.
그는 이어 참여정부 때부터 오랜 인연을 맺은 이해찬·정동영 두 대표를 향해 반가운 소회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학수고대 보람이라는 게 바로 오늘 같은 광경을 놓고 예로부터 쓰던 의사 표시라고 생각된다”며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해찬 선생에 대해 통신을 통해서 자료를 읽을 때마다 옛 추억에 잠기곤 했다”고 말했다. 정동영 대표를 향해선 “정동영 선생과도 다른 동무들 통해서 들었는데, 내 물어봤다”며 “남녘에서 정동영 선생이 지금 무슨 활동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백의종군한다’고 그러더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참여정부 때 통일부장관으로 만났던 정 대표가 이후 대선 패배 등으로 정치적 공백기를 가진 것을 두고 농담하는 동시에 은근슬쩍 자신이 그간 관심을 갖고 먼 발치에서 지켜봐왔음을 강조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다시 원내로 복귀하셨기 때문에 우리와 손잡고 통일 위업을 성취하기 위해서 매진하자고 했다. 정의당 대표 여사하고도 다시 만나게 되니까 아름다운 마음으로 더 뜨겁게 합심해서 통일 위업 성취에 매진해 나갑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 대표가 “위원장님은 10년 전에 뵀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칭찬하자 “변함이 없어요?”라고 반문하며 “아니 (정동영) 선생 모습이나 이해찬 선생 모습이나 뭐 마찬가지다. 우리 통일 위업을 성취할 때까지는 영원한 요 모습대로 고저 고저 활기 있게 싸워 나갑시다. 우리가 모두 졸장부가 되어서야 되겠나. 대장부가 됩시다”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2000년) 6·15 정상회담 하고 나서 (남북관계가) 잘 나가다가, 노무현 대통령 때까지 잘 나가다가 그만 우리가 정권을 뺏기는 바람에 지난 11년 동안 아주 남북관계 단절이 돼가지고 여러 가지로 손실을 많이 봤다”며 “이제 저희가 다시 집권을 했기 때문에 오늘 같은 좋은 기회가 다시 왔는데, 제 마음은 남북관계가 아주 영속적으로 갈 수 있도록 튼튼하게 이번에는 만들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런 이 대표의 말에 “이해찬 선생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직에 올라섰다는 희소식이 전파하자 다시금 통일의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리라는 신심을 가지게 됐다”며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하고 시간상 관계도 있고 그래서 많은 얘기를 할 수 없지마는 그래도 내가 어제 남녘 동포들에게 얘기한 내용을 여러분들께도 알려드려야 그래도 구면 지기 사이의 그 의리를 지키는 것으로서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에 내가 양해를 구하면서 내가 남녘 동포들에게 발언한 내용을 간단히 추려서 먼저 말씀 드리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표는 전날인 18일 안동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 북쪽 관계자들과의 면담에 일방적으로 불참해 면담이 취소된 데 대해 이날 평양 고려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어제 김영남 위원장과 당 대표들만 따로 만나려고 이야기했는데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돼 장관님들이 이쪽에 합류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보낸 서신은 이미 전달했고 남북국회회담, 3·1운동 100주년 행사 공동 개최를 제안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 등과 김 위원장의 면담이 성사된 것은 18일 환영 만찬 연회장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당연히 하셔야 된다”며 즉석에서 지시한 사항인 것으로 전해졌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평양공동취재단
[화보]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