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에서 추석 연휴가 끝나면 계파 갈등이 불거지고, 당권을 쥐기 위한 ‘잠룡’들의 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지난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지만, 지지율 정체 속에 향후 계파 갈등이 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다.
자유한국당 비대위는 지난 20일 비공개회의를 열어 전국 당협위원장 일괄사퇴 안건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사고 당협 22곳을 뺀 231곳의 당협위원장 전원이 오는 10월1일 사퇴하게 된다. 김병준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반대가 없을 수가 없다"면서도 "당이 비상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선당후사 정신에서 이해해달라"고 했다. 자유한국당은 추석 연휴 이후 김용태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조직강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당협 조사·감사에 착수한 뒤 연말까지 당협위원장 교체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를 두고 ‘친박(근혜)’계나 ‘친홍(준표)’계는 ‘찍어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장 먼저 쫓겨나야 마땅한 사람은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라며 “김 위원장이 비상대책위원장이 되고 나서 자유한국당은 제1야당, 대안 야당이 아니라, 노무현 2중대 이미지만 풍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당협 위원장을 뚜렷한 이유 없이 한꺼번에 무조건 사퇴시키는 것은 폭거”라며 “당협위원장을 내부에서 무조건 전원 학살하는 만행은 악질적인 이적행위”라고 밝혔다. 한 친박 의원도 “당의 혁신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일괄 사퇴 방식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추석 연휴 이후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 지도부도 일부 당협위원장은 청산 대상임을 시사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에 속한 한 의원은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위해 지난해 홍준표 대표 시절에 일부 당협위원장들이 바뀌었다”며 “당시 제대로 된 검증이 없어 선거를 위한 측면이 있었고, 이번에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살펴보고 필요하면 교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당협위원장 교체가 불가피하고, 이는 당내 계파 갈등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비대위 역시 지난 7월 세워진 이후 별다른 구체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인적청산’이라는 가장 뚜렷한 성과를 보여줄 수도 있다. 김병준 비대위 체제는 최근 추석 밥상에 오를 메뉴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맞선 ‘국민성장’을 내세웠지만 개념만 있을 뿐 구체성이 떨어졌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한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홍준표 (전) 대표의 귀국을 맞춰서 일부러 발표한 것 아니냐는 얘기하는 사람들까지 있다”며 “내용이 충실하게 갖춰져 있지 않아서 지금 뭐라고 논평하기가 적절치 않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권을 노린 주자들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김무성 의원은 최근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30여명의 원외 당협위원장들과 만났다. 김무성 의원 측근은 “바른정당으로 갔다가 돌아온 당협위원장들이 주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 초대를 받아서 간 것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일부 당협위원장은 “김무성 의원을 당대표로 세우자”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등 향후 전당대회를 의식한 얘기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김무성 의원은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자유한국당의 첫 주자로 나서고, 공화주의, 소득주도성장 등과 관련된 토론회를 잇달아 개최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도 2개월간의 미국 체류를 마치고 지난 15일 귀국해 정치 일선 복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당내에서는 홍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홍 전 대표는 귀국하며 “봄을 찾아가는 고난의 여정을 때가 되면 다시 시작하겠다”며 정치 재개를 선언했다. 하지만 김병준 비대위 체제가 예고한 인적청산에서 ‘친홍’계가 타깃이 될 수 있어 당내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
친박계에서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옹립하려는 움직임과 함께 일부 중진 의원들은 원외 당협위원장을 만나는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황 전 국무총리는 지난 7일 <황교안의 답: 청년을 만나다> 출판기념회를 열고 공식적인 정치 활동의 시작을 알렸다. 이 자리에는 김진태·송언석·이채익·정종섭·윤상직·유기준·강효상·추경호 의원 등 상당수 친박계 의원들이 참여했다. 이밖에 나경원·심재철·정우택 의원 등도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론조사전문기관 입소스코리아의 이상일 본부장은 “당협위원장 일괄 사퇴라는 강수를 들고 나온 이상 한국당이 당내 내분 상황에 다시 진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인다”며 “그 결과에 따라 현재 몸집을 유지한채 2020년 총선을 준비할지, 재분열 상황으로 치달을지 등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내부 권력투쟁에만 매몰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와도 정부·여당을 견제하는 대안세력의 중심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계파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세대교체나 젊은 보수화가 불발되면 아무리 격렬한 전쟁을 거쳐 당권이 결정되더라도 국민의 시각에는 별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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