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왼쪽에서 두번째)가 지난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 10일에 시작된 국정감사가 어느덧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국감은 국회가 행정부 운영을 감시·비판하는 장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야당의 무대로 꼽힌다. 하지만 이번 국감의 최대 쟁점은 여당 의원인 박용진 의원이 터뜨린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였다. 반면 야당 쪽에서는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 외에 이렇다할 한방이 없었다. <한겨레>에서 야당을 출입하는 기자들이 모여 이번 국감을 평가하는 ‘수다’를 떨었다.
먹고 죽을래도 없었다. 몇 가지 올린 야당발 단독 자료들은 크게 얘기가 안 된다며 ‘킬(지면계획에 잡히지 않음)’되기 일쑤였다. 반면 국회 기자실에 함께 있는 여당 출입기자들은 바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사립유치원 후속 법안을 취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 적폐는 여전히 화수분처럼 기사거리를 쏟아냈다. 다 ‘민주당발’ 자료였다. 이정훈, 정유경, 송경화 등 <한겨레> 정치팀 야당 출입 기자 3인방이 2018년 국정감사(10월10일~11월7일) 막판 즈음 모여 국정감사 전반을 평가하는 자리를 가졌다. 결코, 여당팀에 비해 시간이 남아 우리만 모인 것은 아니다.
야당이 9년만이라 힘 못쓰나?
송경화(이하 송) 국정감사는 대개 ‘야당의 무대’로 꼽힌다. 753개 정부기관을 들여다보고 지적하기에 야당에서 ‘국감 스타’가 탄생하기도 쉽다. 이번엔 스타 자리를 여당에 뺏긴 것 같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단연 ‘톱’이었다. 사립유치원 비리는 국정감사의 많은 이슈를 다 잡아먹을 정도로 폭발력이 컸다. 정무위에서 삼성을 좇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교육위로 옮겼던 박 의원이 이번에 제대로 칼을 벼린 것 같다. 반면 야당에선 국정감사 초·중반까지 이렇다 할 ‘한 방’이 없었다. 한국당 인사들 사이에선 “야당이 9년만이라 그런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정유경(이하 정) 이번엔 박용진의, 박용진에 의한, 박용진을 위한 국정감사였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정훈(이하 이) 야당 의원들은 전반적으로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그랬다. 국정감사 이틀째인 지난 11일 전원책 변호사를 비롯한 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 명단이 확정됐다. 당협위원장들에 ‘칼’을 휘두를 이들이다. ‘친박’ 등에 대한 청산 여부를 두고 당내 혼란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전원책 위원은 임명 뒤 태극기부대를 끌어안겠다는 식의 발언으로 논란을 키웠다. 인적 쇄신을 한다고 하니 의원들 관심이 국정감사장보다는 지역구 관리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인데도 국정감사 준비로 출근한 한 보좌관이 “의원님의 마음이 다른 데 있어 우리도 시늉 정도만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5개월에 불과한 점도 야당이 활약하기에 조금 어려운 여건이었던 것 같다. 국정감사 후반기에 들어 한국당은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으로 만회를 시도하고 있다.
정 무리수도 있었다. 국감 첫날인 10일 김진태 한국당 의원이 사살된 퓨마 문제를 지적하겠다며 애먼 벵골고양이를 정무위 국정감사장에 데려와 떠들썩했다. 동물단체의 비판까지도 어느 정도 염두에 둔 `노이즈 마케팅’ 전략이었다. 기발한 ‘소품’을 화젯거리로 삼는 전략은 초선 의원들이 많이 하는데, 재선에 ‘네임 밸류’도 있는 김 의원이 무리수를 던진 건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내년 초쯤으로 예상되는 한국당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할 계획이 그런 행동의 배경인 것 같다. 문화체육관광위에선 한복을 입은 민주당 손혜원,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 등이 포털 주요 사진기사로 올랐다. 김수민 의원은 개량 한복을 입을 경우 고궁 입장 혜택에 제한이 생기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취지였다. 화제는 됐지만, 너무 보여주기식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오른쪽)이 고양이를 데려와놓고 대전동물원 푸마 사살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당 기재위원장과 간사가 다투기도
송 한복을 입은 손혜원, 김수민 의원은 지난 10일에도 함께 화제가 된 바 있다. 선동열 야구 대표팀 감독을 국정감사장에 불러 질의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일었다. 아시안게임 대표 선수 선발 과정의 문제점을 따지려는 자리였다. 의원들이 지적하는 근거와 야구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야구 팬들이 화가 많이 났다.
정 김수민 의원이 선수들의 지난해 기록을 보여주면서 왜 이걸 올해 아시안게임 출전 기준으로 삼지 않은 것이냐고 따질 때 솔직히 어안이 벙벙했다.
이 법제사법위원회는 그래도 야당이 많이 주목받지 않았나. 파행을 주도했다는 측면에서….(웃음)
정 장제원-이은재 한국당 ‘콤비’가 하반기 법사위에 배정됐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던 그림이었다. 단순 ‘화력’ 측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다. 12일이 피크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제주 강정마을을 찾아 관련자들에 대한 ‘사면복권 검토’ 발언을 한 것을 두고 장제원 의원은 “재판이 끝나지 않은 강정마을 사건의 사면복권을 논하는 것 자체가 ‘재판농단’이자 ‘사법무력화’”라고, 이은재 의원은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어떤 이야기가 됐기에 사면 얘기가 나왔는지 설명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국정감사는 파행됐다.
이 여상규 법제사법위원장의 국감 진행 방식에 대해 여당 의원들의 불만이 상당했다. 위원장으로 리더십을 발휘해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야당 의원들의 의사진행 발언에만 너무 ‘열려있다’는 지적이었다. 여 위원장은 한국당 소속이다.
정 판사 출신인 여 위원장은 국정감사 전엔 판사들과 관련된 이슈에서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며 위원장으로서 중립적이기보다 법원 쪽에 무게를 둔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은애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할 때 ‘사법농단’ 관련 얘기가 나오니까 법원 편을 들면서 ‘버럭’했던 모습이 대표적이다.
송 야당이 기선제압을 은근히 기대했던 위원회가 기획재정위원회였다. 심재철 한국당 의원이 제기한 국가재정정보시스템에서 얻은 비공개자료 논란이 한창일 때 국정감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반기에 한국당 기재위 선수들이 만만찮다는 평가가 많았다. 권성동, 김광림, 나경원 의원 등 중진들이 포진했다. 16일 재정정보원 대상 국정감사가 ‘디(D) 데이’였다. 그런데 오히려 ‘선방’은 민주당에서 날렸다. 강병원, 김경협 의원이 심재철 의원을 감사위원에서 제척해야 한다며 시작과 동시에 목소리를 높였다. 권성동, 나경원, 박명재 등 한국당 의원들이 반발하며 심 의원을 지원사격하고 나섰지만, 강병원-김경협 콤비가 이에 밀리지 않았다. 특히 김경협 의원은 목소리가 정말 크더라.
이 심재철 의원은 앞서 국회 대정부질문 때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상대로 틀었던 ‘시연’ 영상을 국정감사장에서 다시 틀었다. 새 팩트를 추가로 제시하지 못하면서 점점 ‘실탄’이 떨어졌다는 인상을 줬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싸움을 가만히 지켜보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결국 ‘중재’에 나서던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기재위 소속 의원으로서 참담함을 느낀다”고 지적하며 중재를 위한 정회를 요청했고, 위원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송 기재위원장도 기억에 남는다. 정성호 위원장으로, 민주당 3선 의원이다. 민주당의 강병원, 김경협 의원이 국정감사법 ‘제척, 회피 조항’을 언급하며 심재철 의원의 국정감사 배제를 계속 주장했지만 정 위원장이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막판에는 “강병원 의원의 주관적, 독단적 해석 같다”며 세게 맞서기까지 했다. 여당 위원장과 여당 간사가 국정감사장에서 맞붙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여상규 법제사법위원장은 같은 당(한국당)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며 여당 의원들의 비판을 받았었는데 말이다.
‘채용 비리’로 ‘유치원 비리’ 만회 시도
정 여당이 초반부터 사립유치원으로 ‘대박’을 쳤다면, 심재철 건을 키우지 못한 야당은 후반에 들어서야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로 만회를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악용해, 기존 직원들의 친인척이 대거 정규직으로 채용됐다는 주장이다. 사실 이는 1년 전 유민봉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제기했던 것이었다. 당시에는 정규직 전환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는데, 이들 가운데 친인척이 꽤 있다는 의혹이었다. 이번에 실제 대거 정규직으로 채용됐다는 내용이 추가된 것이다. 유민봉 의원실에서 1년 동안 준비했다고 한다. ‘심재철 사건’과 달리 당 지도부와 공조도 초반부터 이뤄졌다. ‘심재철 사건’ 당시 자료를 당 차원에서 공유하지 못해 제대로 문제 제기가 어려웠다는 반성이 있었다.
송 18일 행정안전위 국정감사가 한국당 입장에서는 타이밍이 딱 맞았다. 서울시가 감사 대상인 날로, 박원순 시장을 놓고 산하기관인 서울교통공사 건에 대해 따져 물을 수 있었다. 이에 박 시장은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하기로 했다”고 했고, 여당 의원들은 “한국당이 잘못된 샘플로 통계를 낸 것 같다”며 같은 당 소속의 박 시장을 측면 지원했다. 이날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규탄대회를 열겠다며 시청에 진입을 시도했다가 시청 관계자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지도부가 나서 국정감사장 밖에서 ‘여론전’을 펼친 것이다.
이 하지만 계속 공세를 가중시킬 만한 똑 떨어지는 팩트가 마땅치 않아 폭발력이 부족했다. ‘채용 비리’의 연장선상에서 민경욱 한국당 의원이 인천공항공사를 겨냥한 기자회견을 잇따라 했는데, “그래서 어제 내용이랑 새로운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였다. 갈수록 문제를 지적한다는 인상보다 정쟁에 나서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한국당 사무총장 김용태 의원이 박원순 시장에게 “시장직을 걸라”고 주장한 것은 김 의원 본인이 서울시장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정 오는 29일 각 상임위별 마지막 종합감사가 남았다. 그리고 10월29~30일엔 여성가족위원회, 10월31일~11월6일엔 정보위원회, 11월 6~7일엔 운영위원회가 남아있다. 운영위원회는 청와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결전’의 날로 꼽힌다. 국가정보원을 상대로 하는 정보위원회 국정감사는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추가 취재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한국당은 이은재 의원이 정보위 간사다.
송 그러나 저러나 내일 야당팀은 아침보고 뭐 하지?
정 한국당 의원들의 마음을 ‘콩밭’으로 가게 만든 원인인, 보수대통합? (웃음)
정리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