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치개혁특위 첫 전체회의가 지난 24일 국회에서 심상정 위원장 주재로 열리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게임의 ‘룰’을 바꿀 수 있을까.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 30일 열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2차 회의에서 입을 모아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을 주장하고 나섰다. 24일 첫 회의는 위원장 선임 등 특위 운영 관련된 회의였으니, 30일 회의가 ‘정치개혁’의 실제 내용이 논의된 사실상의 첫 회의인 셈이다.
이날 회의에서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기 위해)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을 국민이 용인하겠느냐”며 “결국 지역구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중대선거구제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의당 등이 주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경우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하는데, 국민적 반발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정개특위 한국당 간사인 정유섭 의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내각제에 맞지 대통령제에 맞지 않는다”며 “중대선거구제로 가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냈다.
의원 정수 확대 불가론을 내세웠지만, 핵심은 중대선거구제 전환이다. 중대선거구제는 하나의 지역구에서 1명의 당선자를 선출하는 현행 소선거구제와 달리 2명 이상의 당선자를 선출하는 제도다. 표의 등가성과 정당별 지지도를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특정 지역을 한 정당이 독식하는 쏠림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지역구가 넓기 때문에 전국적 지명도가 높은 인물에게 유리하다.
중대선거구제는 자유한국당의 수도권 의원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텃밭’인 영남권 의원에게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이어가도 무방하지만, 그 외 지역의 의원들에겐 선거구제 개편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율이 10% 안팎(한국갤럽 기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수도권에 적을 두고 있는 의원으로선 다음 총선은 ‘무덤’이 될 수 있다. 차라리 한 지역구에서 여러명의 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시행하면, 그 ‘여럿 중의 하나’로 포함될 수 있는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승자독식 구조의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경우 “지역 정당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도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의 정당 득표율은 각각 51.4%와 27.8%였지만, 한국당은 수도권에서 광역·기초의회 의석 262석 중 8석을 얻는 데 그치면서 ‘충격’을 안겼다. 선거구제 개편 없이는 오는 총선도 ‘전멸’할 것이라는 위기감이다. 한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이대로 가자면 2018년 지방선거의 참패를 되풀이하자는 것 밖에 안된다”면서 “사실 지금 논의되는 어떤 선거구제 개편도 한국당에 유리하지는 않지만, 일단 중대선거구제로 방향이 잡히고 나면 1년 뒤 총선이나 또 그 다음 총선 쯤 되면 한국당이 절반 정도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물론 영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 의원들이나, 의원 개개인별로 이견은 있다. 한 영남권 의원은 “중대선거구제를 할 경우 호남에서 한국당 의원이 뽑힐 가능성은 적지만, 영남에서는 민주당 의원이 뽑힐 가능성이 있다. 결코 이익이 아니다”고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선거구제 개편을 주장해 온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해 수도권 의원들이 주도권을 잡고 중대선거구제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어 선거구제 개편 논의엔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정개특위 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서울(정양석 의원), 안성(김학용 의원), 인천(정유섭 의원) 등 수도권이거나, 민주당 텃밭이 되고 있는 부산(장제원 의원), 대구·경북 중에서도 민주당 지지세가 높은 지역(장석춘 의원) 출신”이라며 “당 소속 특위위원 간 이견이 두드러지지 않는만큼 당 내 일부 반발은 있겠지만 속도감 있게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민주당을 비롯 여야 협의”라고 말했다.
정당 간은 물론 당내에서도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달라 ‘선거법 개정이 헌법개정보다 어렵다’는 푸념도 나오지만, 자유한국당 안에선 이번엔 타결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구제 개편’이라는 명분을 확보한데다, “지금까지 선거구제 개편을 주장해 온 민주당이 드러내 놓고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자는 반대 의견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거기에 선거구제 획정이 급한 정의당·민주평화당 등이 가세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협상 여부도 완전히 닫아걸지는 않은 상태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3월 원내대책회의에서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을 확보하기 위해 농어촌 선거구를 달리하고 비례대표제를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농촌은 소선거구제 유지, 도시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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