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30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해군2함대를 방문해 천안함 용사 추모비에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2·27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대표에 도전하는 후보들이 앞다퉈 ‘강경 보수성향’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전통적인 지지층의 표심을 잡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되지만, 지나친 ‘우회전’이 당의 외연 확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30일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지난해 6·13 지방선거 때 내세운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습니까’ 구호를 다시 들고나왔다. 그는 “북핵 위기는 현실화됐고 민생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다. 좌파정권과 치열하게 싸우겠다. 당을 보수 이념으로 무장해 자유대한민국을 다시 건설하겠다”고 했다. 당 대표 출마를 “전장에 서겠다”고 비유하며 ‘좌파와의 전쟁’에 나서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지난 29일 당 대표 출마선언식을 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무덤에 있어야 할 386 운동권 철학이 21세기 대한민국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80년대 주체사상에 빠졌던 사람들이 청와대와 정부,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현 정부의 핵심 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은 “철 지난 좌파 경제실험”이라고 비난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선명성’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최근 당내 북핵 세미나에서 “북핵 문제 대응을 위해 핵 개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고 반공·자유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이른바 ‘태극기 부대’도 보수 통합 대상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들 주요 후보는 모두 ‘태극기 부대’ 수용 의견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주요 경제·대북 정책이 ‘좌파 성향’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황 전 총리는 전날 “김정은 칭송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세력이 광화문을 차지하고 있다”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 주요 참패 요인이 ‘강경한 안보정책’으로 지적되고, 좀 더 포용적인 보수정당으로 쇄신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냈던 것과 반대되는 모습이다.
자유한국당 안팎에선 후보들의 이런 선명성 경쟁이 전통적 보수를 자임하는 당원들을 공략하려는 차원이라고 분석한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원투표가 70%를 차지하는데, 책임당원의 절반가량이 영남권에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태극기 부대가 “보수 정체성이 분명한 당 대표를 만들자”며 대거 입당한 것도 당권 주자들이 보수 일색을 강조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하락세의 ‘반사 효과’를 노리겠다는 전략도 있다. 경제 악화, 북핵 문제 교착 상태 등으로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두달째 50% 아래에 머물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손혜원 의원 논란 등 여러 악재로 40% 아래로 떨어졌다. 반면 한국당 지지율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후보들이 당내 표심 잡기에만 집중해 대안 없는 ‘정권 비판’이나 ‘보수 결집’에만 열을 올릴 경우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현 정부에 가장 부정적인 계층은 소상공인, 저소득층 등이다. 한국당이 반공적 보수가 아니라 서민적 보수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는 인식으로 지지율 확장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