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19일 여야 원내대표와 회동을 위해 국회 운영위원장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미래당이 선거제도 개편과 검찰개혁 법안의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 지정 문제를 놓고 갈림길에 섰다. ‘반쪽짜리’ 선거제 합의안이라도 받아서 선거 개혁의 고리를 걸어놓아야 한다는 주장과, 선거제도 개혁의 명분과 실리를 잃은 거래를 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맞선다. 반대 쪽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부터 선거제는 바꿔야 하지만 자유한국당 동의 없이 신속처리 안건에 올리는 방식은 부적절하다는 등 다양하다. 손학규 대표와 김관영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을 밀어붙일 태세이고, 옛 바른정당 출신 중심으로 이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탈당이나 지도부 사퇴 등을 거론하며 반발하고 있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19일 기자들에게 “당내 많은 의원이 패스트트랙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다수를 대변하는 게 원내대표의 책무”라며 패스트트랙 추진 의지를 밝혔다. 그는 이날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 법안 조율에 들어갔다.
당에서는 김 원내대표가 들고 온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선거제 개편 합의안이 애초 주장한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후퇴한 타협안이라, 선거제 개혁의 명분과 실리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 4당 합의 초안은 전국 단위 정당득표율로 나눈 각당의 ‘배분 의석’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뺀 나머지 의석을 비례대표로 채울 때 ‘연동률 50%’를 우선 적용한다.
이 때문에 최대한 ‘100% 연동형’에 가깝게 합의해 중소정당의 존립 기반을 더욱 강화하려는 목표가 불투명해진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누더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려고 싸워왔나”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 외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지상욱 의원 등은 “민생과 상관없는 의제로 국민을 패싱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는 하태경 의원은 한국당의 의원정수 축소 제안을 받고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해 다시 협의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에 자유한국당이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압박에 나서는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선거제 패스트트랙에 동의한다면 바른미래당은 중도보수 정당으로 볼 수 없다”고 공개 압박한 것도, 보수 통합을 염두에 두고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에게 ‘경고’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선거제 패스트트랙에 동의하더라도 공수처·검경수사권 조정과 묶어 처리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원들도 있다. 민주당이 야 3당의 선거제 개편 요구에 소극적이다가 공수처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을 이루려고 야 3당과 함께 선거제도 개편과 검찰 개혁 법안을 꾸러미로 묶어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 있다. 지난해 말 민주당이 선거제도 개편안과 2019년도 예산안을 함께 처리하자는 야 3당의 요구를 거절하고 자유한국당과 함께 예산안을 통과시킨 전력 때문이다. ‘예산안은 자유한국당과 손잡고 공수처는 바른미래당을 활용한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은 “정부·여당의 술수에 넘어가 다른 법과 연계해 패스트트랙에 올려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인 권은희 의원도 같은 이유로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선거제도 개편안과 연계하는 전략에 의심을 드러냈다.
반면 ‘누더기’라도 패스트트랙에 올려 선거제 개혁의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게 찬성 쪽 입장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요구하며 단식까지 했던 손학규 대표는 지난 16일 기자들에게 “차선도 아니고 차악이지만 선거제 개혁을 물거품으로 만들 순 없다”고 했다. 바른미래당의 다른 의원은 “(이번 여야 4당 합의안 가운데) 석패율제 도입만으로도 과거보다 진전된 개혁”이라고 말했다. 석패율제는 지역구에서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해당 권역의 비례대표로 구제하는 제도다.
현재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 가운데 선거제도 개편안의 패스트트랙 추진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은 약 3분의 1 정도다. 나머지는 검찰개혁 법안 협상까지 지켜보고 판단하겠다며 입장을 보류하거나, 손 대표와 김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쪽인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김 원내대표가 민주당 등과 검찰개혁 법안까지 합의해 의원총회에 안건을 올릴 경우 추인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사법개혁특위, 정치개혁특위 소속 의원들이 (선거제도 개편안과 검찰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표결)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반드시 당론을 모아야 하는 의무사항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개특위 바른미래당 간사인 오신환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의 분열 없이 패스트트랙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유승민·지상욱·유의동·하태경·김중로·이언주·정병국·이혜훈 등 바른미래당 의원 8명은 이날 선거제도 개편안을 검찰개혁 법안과 묶어서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는 데 대한 당내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의원총회 소집 요구서를 냈다. 김 원내대표가 “당론 추인은 의무가 아니다”고 한 데 대해 대응 차원이다. 지상욱 의원은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당헌에는 당의 중차대한 문제를 결정하려면 의총을 열어 당론을 의결하게 돼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책임문제를 따지고 잘못한 사람이 처분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등 여야 4당에선 바른미래당의 내부 결정이 이번 패스트트랙 추진의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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