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이 20일 오후 5시께 별세했다. 향년 71. 김 전 의원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당시 공안당국으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해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김 전 의원은 20일 오후 4시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에서 쓰러져 신촌 연세대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오후 5시4분께 사망 판정을 받았다. 김 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와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민주화 동지였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맞서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고초를 겪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당시에는 공안당국으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했다. 김 전 대통령 자서전에 따르면 당시 고문 수사관들은 김 전 의원을 ‘빨갱이 새끼’로 부르며 “네가 김대중이 아들이냐. 너는 절대로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한다”며 심한 구타를 퍼부었다. 김 전 의원은 고문 도중 허위 자백을 할까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목을 다치기도 했다. 이때의 고문 후유증은 평생 김 전 의원을 괴롭혔고, 결국 파킨슨병으로 이어졌다.
2006년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대가로 1억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잃기도 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시 김대중) 대통령님은 ‘박 실장, 나는 우리 홍일이가 유죄를 받고 의원직을 상실하더라도 현금 3천만원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으면 원이 없겠어’라고 제게 말씀하셨다”며 “당시 김 의원은 3천만원 종이백은커녕 자기 혼자 일어서지도 못했고, 걷지도 못했다”고 적었다.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때에는 거의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임종 순간에 “아버지” 세 글자만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몰라보게 수척해진 모습으로 빈소에 나타나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여야 정치권은 한목소리를 고인을 추모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김 전 의원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헌신해오셨다”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도 구두 논평에서 “김 전 의원의 국가를 위한 애국심과 생전 의정활동에 대해 알고 계시는 많은 국민이 크게 안타까워할 것”이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은 “김 전 의원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거목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의 역경과 고난을 함께 한 분”이라며 “시대와 역사를 위한 김 전 대통령의 위대한 여정을 같이 한 아들이자 동반자로서 김 전 의원을 빼놓을 수 없음은 자명하다”고 애도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페이스북에 “우리 세대가 겪었던 ‘야만의 시대’를 다시 돌아본다. 시대는 변화했지만, 그 변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남겨진 상흔은 깊다”라며 “독재를 유지하기 위하여 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 그 독재를 옹호·찬양했던 자들의 얼굴과 이름을 떠올린다. 삼가 고인의 영면과 명복을 빈다”고 적었다.
고인은 ‘김대중 내란음모조작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당해 3차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에서 5·18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장례는 나흘간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부인 윤혜라씨, 딸 지영·정화·화영씨, 사위 장상현·주성홍씨가 있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3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 5·18 민주묘지다. (02)2227-7550.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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