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1년도 예산안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끝난 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뒷모습 보이는 이)과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우리가 입 여는 건 부적절하다.” “알아서들 해석하시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지만,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말이 없다. 침묵에 담긴 뜻을 헤아리려 청와대 참모들에게 물어보지만 맥 빠지는 답변만 돌아온다. 참모진 반응에선 자칫 청와대까지 ‘플레이어’로 나섰다가는 정치 공방만 거세지고 윤 총장의 존재감만 키워줄 수 있다는 우려가 묻어난다.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 총장이 쏟아낸 발언들은 하나같이 의미가 심상찮다.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대통령이 총선 이후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면서 소임을 다하라’는 말씀을 전하셨다.”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천천히 생각하려고 한다.” 여야의 ‘스피커’들은 이날도 윤 총장의 국감 발언을 두고 라디오 방송 등에서 엿새째 공방을 이어갔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침묵했다.
침묵의 이유는 몇가지를 유추해볼 수 있다. 우선 윤 총장 발언에 청와대가 하나하나 대응할 경우 정치 공방만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총선 이후 ‘적절한 메신저’를 윤 총장에게 보내 임기를 지키라고 했다는 부분은 청와대가 사실 확인에 나서기 애매한 측면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직접 말했다고 하든지 아니면 본인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겠다고 해야지 ‘적절한 메신저’라고 해버리면 우리가 어떻게 대응을 하냐. 잘못했다간 진실 공방으로 흐를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전날 “확인이 불가하다”며 언급을 자제했다.
더 근본적인 침묵의 이유는 청와대의 대응이 윤 총장의 정치적 중량감만 키워줄 수 있다는 점이다. 윤 총장은 22일 국감 당시 퇴임 뒤 거취와 관련해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천천히 생각하려고 한다”고 했다. ‘상황을 봐서 정치를 할 수도 있다’는 뜻이 담긴 대단히 정치적인 발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 총장을 정치 공방의 중심부로 끌어들일 경우 오히려 그의 존재감만 키워줄 수 있다는 게 청와대의 우려다.
2년 임기가 보장된 윤 총장을 중도 경질할 경우 ‘정치 희생양’이라는 프레임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청와대의 고민이다. 실제 대검 국감 이후 윤 총장의 대선주자 선호도가 상승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날 보도되기도 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가 지난 25∼26일 전국 성인 1032명을 상대로 벌인 ‘차기 정치 지도자 적합도’ 조사에서 윤 총장은 15.1%의 지지를 얻으며 이재명 경기지사(22.8%), 이낙연 민주당 대표(21.6%)를 추격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9일 국회 운영위원회가 예정된 만큼 노영민 비서실장이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성실히 대답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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