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서울시장 선거 본경선 미디어데이에서 나경원 경선 후보자가 기호추첨을 마친 뒤 자신의 사진 위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야권에서 현금성 지원 공약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등 보편복지를 이미 ‘맛보기’로 체험한 유권자들에게 손쉽게 다가가기 위한 것이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선거용 선심성 예산 뿌리기’라며 현금 지원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온 야당 입장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나경영(나경원+허경영) 논란’을 부른 건 국민의힘 예비 경선에서 1위를 한 나경원 예비후보의 ‘1억 원대 결혼·출산 지원 공약’이었다. ‘토지 임대부 주택’에 입주한 청년이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는다면 대출이자 대납으로 최대 1억1700만원의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나 후보는 만0~5살 영유아를 대상으로 월 20만원씩 양육수당 지급을 약속했고, ‘서울형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해 최저생계비가 보장되지 않는 20만 가구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도 밝혔다.
이에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는 8일 <시비에스>(CBS) 라디오에서 “돈을 준다고 출산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출산의 기본 가치는 행복”이라며 “대한민국 국민들은 아무 근거 없이 마구 국가가 돈을 퍼주는 것을 그렇게 썩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나 후보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영선 후보님, 달나라 시장이 되시려고 합니까?’라는 제목의 반박 글을 올려 “어떻게’ 시민들을 행복하게, 즐겁게 해드릴 것인가? 그 ‘how to’(방법)에서 과연 주거 안정을 뺄 수 있는가. 문재인 정부가 2018~2020년 3년간 쏟아부은 저출산 예산만 무려 96조원이 넘는다. 그 돈 잘 썼으면 이렇게까지 안 됐다”고 반박했다.
야권에서도 ‘나경영 논란’에 대한 비판은 이어지고 있다. 오신환 전 의원은 이날도 “얼핏 들으면 황당하고 자세히 보면 이상한 공약”이라며 “반값아파트에 입주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혜택을 받은 건데 왜 이분들한테 또다시 이자를 지원하게 되는 건지 그게 잘 납득가지 않는다. 해명들도 오락가락한다”고 비판을 이어갔다. 급기야는 “이제야 다른 정치인들이 (나를) 따라 하려고 용쓴다. 정치인들이 허경영의 가장 큰 홍보요원이 될 것”이라고 허경영 국가혁명당 총재까지 가세했다.
‘선심성 포퓰리즘’ 전쟁 선포한 나경원이 돌변한 이유는
나 후보의 공약이 여야를 막론하고 집중 공격을 받는 데는 공약 그 자체로 파격적인 지원이라는 점도 있지만, 2019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당시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 정책에 ‘악성 포퓰리즘’이라며 앞장서 저지해온 인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9년 8월 “선심성 포퓰리즘과의 전면전을 펼치겠다”고 밝힌 나경원 당시 원내대표는 추경 예산에서 구직급여 4500억원, 고용창출장려금 예산 721억원, 기초생활보장제도 55억원, 저소득층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 예산 129억원, 저소득층 의료급여 경상보조 예산 762억원 등을 대거 삭감한 뒤 “역사상 유례없는 쾌거”라고 자평했다. 이에 “어려운 형편에서도 꿈을 키워가는 청년들의 일자리 예산을 줄이고, 병원비 걱정에 병원 문턱도 쉽사리 못 넘는 서민 지원 예산 줄인 게,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이냐”는 여당의 비판을 받았다. 그랬던 그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오면서 ‘현금성 공약’을 하루가 멀다 하고 내놓고 있는 것이다.
‘현금성 지원 공약’ 쏟아내는 야권 후보들, 왜?
나 후보뿐 아니라 다른 야권 후보들도 현금 지원성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예비후보는 손주 1인당 최대 20만원, 쌍둥이나 두 아이 돌봄은 40만원까지 지급하는 ‘손주돌봄수당’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오신환 예비후보는 소득이 없거나 월 소득이 1인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서울시 거주 청년들에게 매월 최대 54만5000원을 기초생계비로 지급하는 ‘청년소득 플러스’ 정책을 내놓았다. 또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해 오 후보는 영업손실 기간 중 최대 500만원까지 지급을 약속했고, 조은희 예비후보는 분기별 영업손실 100만원 보상 공약을 내걸었다. 오세훈 후보는 모든 시민에게 건강관리기능을 탑재한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야권 후보들이 앞다퉈 현금·현물 공약을 내놓는 것은 일단 내부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유권자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야당은 21대 총선 완패의 쓰라린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여당이 ‘똑같이 나눠주겠다’며 전국민 재난지원금 카드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는 사이 자신들은 선거용 퍼주기 공약이라며 비판만 하다가 중도표를 놓쳤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내 공감대가 마련되지 않은 채 너도나도 현금 복지 공약을 내놓는 것은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 비대위 관계자는 “서울시장 예비후보들이 서울시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지 공약을 내는 것은 우리 당 기조 변화와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후보가 확정된 뒤에 공약에 대해서는 당과 세부적인 조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나경원 후보의 경우 강경 보수 우클릭에 대한 비판을 피해 여론조사 100%인 본경선에서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해 파격적인 복지 제안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야권의 과다한 복지 공약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당의 일관된 행태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실천 의지가 부족한데 시민들에게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짚었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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