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활한 정권 이양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자 간 회동이 장기간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전날 청와대가 대통령 집무실-국방부-합참 연쇄 이동에 제동을 걸자, 당선자 쪽에선 ‘이러면 만날 일이 없다’며 사실상 실무 협상 결렬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한국은행 총재 임명 등 경제 현안과 한반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교·안보 현안 논의도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은 22일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면서도 “실무적인 만남의 구체적인 추가 일정이 들어온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회동 성사 가능성에 대해 “예측할 수 없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지기를 국민과 함께 거듭 기대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전날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자 비서실장은 접점을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헤어졌다.
역대 대통령과 당선자 간 회동까지 가장 오랜 기간이 걸린 경우는 대선 뒤 9일 만에 성사된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자의 만찬, 2012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자의 차담이었다. 이번엔 지난 16일 1차 회동 약속이 무산된 뒤 13일째 기약이 없는 상태다.
먼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자 회동은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보다 인사권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회동이 1차 무산된 이유는 한국은행 총재와 감사원 감사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 후임 인선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인선을 위해 윤 당선자와 협의를 희망했지만 윤 당선자 쪽은 인사를 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실무 협상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1차 회동이 깨지자 “무슨 조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청와대의 문은 늘 열려 있다”며 지난 18일 직접 윤 당선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윤 당선자가 20일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결정하면서 군 지휘소인 용산 국방부-합동참모본부 이전을 무리하게 서두르자, 문 대통령은 21일 “시간에 쫓겨야 할 급박한 사정이 있지 않다면 국방부, 합참, 청와대 모두 보다 준비된 가운데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 순리”라며 ‘이전에 드는 예비비’ 지급을 막아서면서 분위기는 다시 얼어붙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자의 회동은 냉각기를 거쳐 다시 추진될 가능성은 있다. 박수현 수석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른) 안보 공백에 대한 청와대 엔에스시(NSC·국가안전보장회의) 우려와 두 분의 회동은 별개”라며 “이럴수록 두 분의 회동이 절실하게 더 필요한게 아니겠냐”고 했다. 박 수석은 “예비비는 필요하면 바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처리할 일”이라고 여지도 남겼다. 다만 원활한 정부 이양에 대한 국민적 우려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공급망 위기가 커지면서 전세계 물가가 오르고 금융의 역할도 커지고 있지만, 임기가 3월까지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후임은 여전히 공석이다. 정권 교체기를 맞아 북한은 미사일 발사 시험 등으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은 하루 확진자가 30만명을 넘고 있고, 하루 사망자는 지난 21일 역대 두번째 규모를 기록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문 대통령이 당선자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지만, 당선자 쪽에선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만남을 피하려고 할 것”이라며 “지금은 양쪽 모두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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