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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실

36년 계단밟아 과장→대통령 초기 한국외교 큰 족적 남겨

등록 2006-10-22 19:04수정 2006-10-22 23:12

1979년 12월21일 열린 제1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는 최규하 대통령. 연합뉴스
1979년 12월21일 열린 제1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는 최규하 대통령. 연합뉴스
최규하 전 대통령 역사속으로
22일 별세한 최규하 전 대통령의 삶을 몇 개의 단어로 압축하면, ‘성실’ ‘실무’ ‘편승’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는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독재정권 교체기’의 증인이었다. 하지만 이를 막지 않았고, 나중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침묵은 편승과 잘 어울리는 짝이다. 어쩌면 침묵은 그의 삶 자체일 수도 있다. 그의 생애와 이력을 살펴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1919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그는 1932년 원주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웠다. 37년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한 그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41년 도쿄고등사범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이번에는 만주로 건너가 친일 고위관료 양성기관인 대동학원에 입학했다. 43년 졸업을 하고 만주국 정부에서 관리를 지냈다. 이 부분은 공식 기록에는 빠져 있다.

1988년 12월 서울 서교동 자택에서 문동환 위원장(오른쪽)을 비롯한 국회 광주특위 위원들의 방문을 받은 최규하 전 대통령. 최 전 대통령은 특위 출석을 요청받았으나,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며 출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8년 12월 서울 서교동 자택에서 문동환 위원장(오른쪽)을 비롯한 국회 광주특위 위원들의 방문을 받은 최규하 전 대통령. 최 전 대통령은 특위 출석을 요청받았으나,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며 출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4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전직 대통령 초청 행사에 참석한 최규하 전 대통령.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을 미소를 띤 채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4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전직 대통령 초청 행사에 참석한 최규하 전 대통령.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을 미소를 띤 채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해방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서울대 사범대학 조교수를 지내다가 46년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다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48년 수립된 정부에서 농림부 양정과장을 맡았지만, 영어 구사능력은 그에게 곧바로 외교관이라는 화려한 길을 열어 주었다. 당시 변영태 외무부 장관은 그를 외무부 통상국장에 임명했다. 이후 주일대표부 총영사, 주일대표부 참사관, 주일공사, 외무부 차관으로 승승장구했다. 60년 4·19로 차관직을 사임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를 무척 신임해, 67년 외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만주군관학교 출신이다.

그는 71년까지 4년 동안 외무부 장관을 지냈다.

당시 외무부 공무원들은 장관에게 영어로 쓴 문서를 결재받을 때는 무척 신경을 써야 했다. 철자 하나, 마침표 하나라도 틀리면 최규하 장관이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장관에서 물러난 뒤에는 75년까지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내며, 남북조절위원회 위원으로 두 차례 평양을 방문했다.

1975년 12월 그는 ‘일인지하 만인지상’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되었고, 76년 3월 국회의 동의를 거쳐 국무총리가 되었다. 당시 박 대통령이 공식 행사에 잘 나가지 않는 바람에, 그는 ‘대독 총리’로 유명해졌다. 1979년 10·26은 그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밀어 올렸다. 그는 그해 12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만주국 공무원에서 시작해 36년 동안 한 계단씩 차례로 밟아 마침내 대통령까지 올라간 것이다.

1996년 11월14일 12·12 및 5·18 재판과 관련해 법원으로부터 강제구인 명령을 받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관과 함께 서교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최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도 1980년 5공 출범 무렵의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연합뉴스
1996년 11월14일 12·12 및 5·18 재판과 관련해 법원으로부터 강제구인 명령을 받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관과 함께 서교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최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도 1980년 5공 출범 무렵의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연합뉴스
2004년 서울대병원에 입원중이던 최규하 전 대통령이 병 문안을 온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4년 서울대병원에 입원중이던 최규하 전 대통령이 병 문안을 온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밀어준 신군부에 ‘편승’했다. 80년 5월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을 지냈고, 80년 8월16일 대통령에 당선된 지 8개월만에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신군부의 압력이 있었을텐데, 그는 침묵을 선택함으로써 역사적 진실을 은폐했다. 81~88년엔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지냈다. 그 뒤에도 청와대 행사에 가끔 나타났지만, 대외 활동은 거의 없었다.

그의 부인 홍기씨는 2004년 7월 먼저 세상을 떠났다. 홍씨는 알츠하이머로 수년간 투병생활을 했는데, 최 전 대통령은 부인 곁에서 극진히 간병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인을 떠나보낸 그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2년여 만에 세상을 등졌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한국 외교의 기초를 닦은 거물’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최단명 대통령’이라는 불행한 기록도 함께 남았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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